김동성 본지대표이사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가슴이 설렌다.

어린 시절 차례지낼 음식(세찬)을 준비하기 위해 대목장을 보시느라 분주하셨던 부모님은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였지만 단대목에는 자식들의 설빔을 사다주시기도 했고, 여의치 못하면 양말이라도 준비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설 단대목이면 설렘과 함께 부모님이 그립다.

설날 풍경을 떠올려보자면 이발소나 목욕탕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발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과 설날아침 동네를 돌며 세배를 다니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러나 요즘 설 대목에는 연휴가 몇 일인지, 어디로 여행 갈지를 고민하며 설렌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설 연휴 시작부터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 연휴 여행을 떠나도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설날의 유래와 역사의 아픔 정도는 알고 설 연휴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날은 한 해의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말로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역사의 기록은 488년 신라시대 새해 아침에 서로 축하하며 왕이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고 해와 달의 신에게 제사 지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다. '고려사' 또한 9대 속절 중 하나로 기록돼 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4대 명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 우리 고유의 설이 일본강점기 이후 설을 두 번 쇠는 민족이 돼 버렸다. 신정과 구정 두 설날이 생겨버린 것이다.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설날이 우리민족에게서 사라져 버린 적도 있었다. 1896년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태양력을 실시하고 음력설을 양력설로 대체해 신정만 쇠기를 강요했다.

결국 양력설·음력설이 생기면서 신정이란 말에 대비해 구정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일본에 이어 그 이후 정권들도 설을 두 번 쇠는 것은 낭비라며 음력설인 우리민족 고유의 명절은 공휴일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음력설인 전통의 설날을 지켜왔다. 결국 정부는 1985년 음력설을 하루 공휴일로 지정하고 '구정', '민속의 날'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름을 잃어버리고 90년만인 1989년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이후부터 3일 연휴제가 됐다고 한다.

이런 설날의 유래와 아픈 역사를 안다면 신정과 구정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 이번 설에는 우리 고유명절의 하나인 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설날 아침에 꼭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안의 종교나 가풍에 따라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 바쁘게 사는 현대사회에서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이나 가족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차례를 여행지에서 지낼 수도 있다. 종갓집이나 장남의 집이 아닌 형제간끼리 돌아가면서 차례 장소를 바꿀 수 있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소 조상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릴 수도 있다. 바쁜 일로 설날에 참석하지 못하면 화상전화로 차례나 세배를 대신할 수도 있다.

세뱃돈이 사이버머니로 바뀌고, 도토리나 게임상품권이 세뱃돈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설날의 전통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풍속이나 설날의 의미와 전통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얼마가지 않아 설날의 의미를 역사교과서에서 배워야 할지 모르지만 설날의 유래와 아픈 역사만큼은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싶다. 대학을 가기위해 한국사가 필수여서 과외를 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설날 풍습이라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과외선생이 돼보면 어떨까.

알고 있는 정도만이라도 자녀들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