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목사

성경은 요셉을 꿈꾸는 자로 소개한다. 하루는 요셉이 형제들과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또 한 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을 향하여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형제들 위에 요셉을 높여 주신다는 꿈이었다.

그런데 이 꿈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어느 날 형들이 세겜에서 양 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 보냈다. 배다른 동생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본 형들은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우며 서로 말한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자."

그래서 요셉이 가까이 오자, 형들은 요셉을 잡아서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정말로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그들에게 팔아버렸다.

창 39장에 보면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애굽 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샀다"고 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 내려갔다.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고, 손발이 묶인 채로 끌려간 것이다. 그렇게 애굽으로 끌려간 요셉을 애굽왕 바로의 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이 샀다. 보디발의 손에 팔려가기까지는 노예시장에 진열되어 온갖 수모를 다 겪었을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이었다. 부자 아버지를 둔 금수저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는 귀공자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더 이상 그를 아끼고 사랑해줄 아버지는 옆에 없었다. 이제는 귀공자가 아니라 팔려간 노예요 종이 되어 버렸다.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절하는 휘황찬란한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의 인생은 꿈꾸는 인생이 아니라 망한 인생이 되었다. 실패한 인생이 되었다. 비참한 인생이 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요셉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는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 39:2)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를 봐서 요셉이 성공한 사람인가? 어디를 봐서 그를 형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그는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이었다. 망한 사람이었다. 애굽으로 끌려 내려갔다. 여기저기 노예시장으로 끌려다니며 물건처럼 진열돼 있던 비참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망한 사람이 아니라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망해도 망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2020년 새해 벽두에 다시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나는 절대로 망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형통한 사람,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외치며 일어서기 바란다.

요셉은 비참한 인생이었지만, 다 망한 것처럼 보이는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의 인생을 붙들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형통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고, 마침내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What is impossible with man is possible with God. 눅18:27)."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 impossible with man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도, possible with God 하나님은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불통을 형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사람이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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