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의약품 중 가장 오래 사용된 것은 '모르핀'이다. 제약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모르핀을 능가하는 진통제가 없다. 모르핀은 육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마음의 아픔 치료에까지 효과를 발휘하지만 사용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역사 속에서도 오늘날에도 모르핀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노출됐다.

모르핀은 덜 여문 양귀비 씨방에서 얻을 수 있다. 꽃이 떨어진 후 남은 씨방에 상처를 내면 하얀 우윳빛 즙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 즙을 모아 잘 말리면 '아편'이 된다. 아편은 10% 정도의 모르핀을 함유하고 있어 가루상태로도 충분한 약효를 발휘한다.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슬픔을 잊게 해주는 약, 아편이 등장한다. "이 약을 섞은 술을 마신 자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도 한나절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리스 멸망 후 아편 사용은 자취를 감춘 후 로마 시대에 재발견돼 진통제나 수면제로 많이 이용된다. 그러나 강력한 효능과 용도뿐만 아니라 독성에 대해서도 엄중했기 때문에 마약으로 일반에 널리 보급되지 않고 의사들에 의해 엄격하게 사용되는 약물이었다.

아편의 효능을 널리 알린 계기는 16세기 연금술사이자 의학자였던 파라켈수스 였다. 그는 철학과 화학·독성학 등을 연구했으며, 연금술시대와 과학시대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위대한 학자였다. 파라켈수스는 아편을 바탕으로 삼아 환약을 개발했고, 이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권장했다.

17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아편팅크'가 개발된다. 아편팅크는 적포도주 등의 술에 적정량의 아편을 녹인 제품이다. 그로부터 수많은 의학자가 유아부터 노인까지 광범위하게 처방하며 아편 중독자가 급증했다.

1803년 약제사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제르튀르가 모르핀(유효성분)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이는 통증을 완화하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이 단순한 물질에 포함된 성분임을 보여준 발견이었다.

아편 성분인 모르핀이 단기적으로 행복한 느낌이 들게 하고 장기적으로 중독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 이유는 뭘까? 1970년대에 들어서야비로소 모르핀의 약리작용을 해명하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미국과 스웨덴이 참여한  세 곳의 연구진이 인간의 뇌 속에서 모르핀이 정착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우리 뇌에서 특정분자가 결합해 정보를 수용하는 부위를 '수용체'라고 부르는데, 인체는 수용체에 결합하는 물질을 스스로 생산한다. 수용체를 '열쇠구멍'이라고 한다면 모르핀은 그 구멍에 우연히 꼭 들어맞는 '가짜 열쇠'이며 인간에게 쾌락이라는 감각을 일으키는 '진짜 열쇠'는 따로 존재한다.

'진짜 열쇠'의 정체는 아미노산이 5개부터 약 30개가 연결된 '펩타이드'라고 부르는 간단한 물질 군이었다. 이 물질들을 통틀어 과학자들은 '엔도르핀'이라고 부른다. 모르핀은 엔도르핀의 앞머리와 흡사한 구조로, 수용체와 결합해 엔도르핀과 같은 작용을 일으킨다.

엔도르핀은 외상을 입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방출돼 고통을 완화해준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느끼는 짜릿한 흥분과 쾌감, 또 사회적 연대감과 안정감 및 수수께끼를 풀었을 때나 뭔가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 등에도 엔도르핀이 관여한다. 엔도르핀과 그 수용체는 인간의 다양한 행동 동기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줄 아주 중요한 실마리다.

모르핀은 임시방편이지만 엔도르핀의 유사작용을 하는데, 지속적으로 투여시 몸이 엔도르핀의 양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생산을 중단한다. 결국 모르핀 공급이 중지되면 몸은 엔도르핀이 부족해져 견디기 힘든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약의 '금단증상'이다. 모르핀의 금단증상은 온몸이 나른해지고 불면증·콧물·오한·극심한 두통과 복통·구토감 등 끔찍한 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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