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것
죽어야 사는 것
  • 김미광 칼럼위원
  • 승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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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마당 있는 집에 살기 전까지는 모든 꽃은 봄에 심고, 꽃씨도 봄에 뿌려야만 따뜻한 봄 햇살에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당에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은 모든 꽃이 다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꽃마다 다 저마다의 시간이 있고 저마다 살고 죽는 시기가 다 다르다는 사실. 원예를 전공하거나 직접 꽃을 피워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나는 마당을 통해 배웠다.

3년 전 마당에 처음으로 튤립을 심었다. 처음에 구근을 사다 놓고 봄에 심으려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튤립은 가을에 심어야 한다기에, 무슨 겨울이면 땅이 얼어버리는데 구근도 같이 얼지 않냐고 반문했더니 튤립을 포함한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겨울에 땅이 얼 정도로 추워야 봄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했다. 그것도 심을 때 구근 껍질을 벗겨 심으란다. 처음 듣는 논리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정말이다. 튤립·수선화·크로커스·아이리스·무스카리 등의 구근들이 다 겨울을 영하의 온도에서 지내야 봄에 찬란한 꽃을 피운다고 하니 나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숨어있는 것 같다.

사람이나 꽃이나 혹독한 시기를 거쳐야 제대로 사람이고 제대로 꽃이 핀다는 결론을 내려 본다. 따뜻하고 온화한 환경에서 살아남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꽃의 화려함과 고상함의 극치를 이루는 아름다움은 기대하기 힘들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혹독한 삶의 겨울을 지나면서 내 자아가 완전히 죽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는 가겠지만 사람다운 사람, 성숙하고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그런 향기로운 사람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야 언젠가 우리와 같은 기나긴 삶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힘이 돼 주는 말을 해주고 진심으로 어깨를 토닥여 공감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우리 집 마당 한 쪽에는 튤립이 심어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수선화를 심었다. 수선화는 주로 공곶이에서 사온 구근들이고 튤립은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것을 구매한 것이다. 첫 해 수선화가 피었을 때 나는 탄복해마지 않았다. 그 고고하고 청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오밤중에도 마당에 나와 꽃을 들여다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튤립이 피기 시작하자 수선화의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튤립의 화려함에 얼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듬해, 수선화는 여전히 그 고고한 자태를 빛내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밀치며 다시 나왔으나 그 아름답던 튤립들은 몇 송이 외는 다시 피지 않았다. 아니 왜? 누군가에게 물으니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구근들이 대부분 다년생으로 개량된 것이 아니라 한 해 피고나면 구근이 작아지거나 소멸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것이라 일년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론은 튤립을 보려면 해마다 구근을 사다 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튤립이 주는 잠시의 화려함 보다 오래가고 끈질긴 생명력의 수선화가 더 귀하듯 잠시 반짝하는 것보다 오래 끈질기게 뭉근하게 하는 것이 긴 삶의 관점에서 보면 더 귀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나는 올해도 땅이 얼기 전에 튤립과 수선화를 심으면서 구근에게 말을 건넸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새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테니 겨울 동안 아무리 땅속이 차가와도 얼어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너희들은 겨울에 죽어야 봄에 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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