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하지 않는 나의 통일이야기
불가능 하지 않는 나의 통일이야기
  • 박재완(상동초 4년)
  • 승인 2019.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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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와 농부 아저씨의 통일 이야기' 김현태 作
본지 제18회 평화·통일 독서감상문 공모전 - 초등 고학년부 최우수상

평소 나는 뉴스에서 나오던 통일이라는 말이 멀게만 느껴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 평화·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통일은 국민들이 원해야 하지만,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 대단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와 농부 아저씨의 통일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나도 희아와 농부 아저씨처럼 작더라도 무언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천적으로 네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희아는 어릴 때 손가락의 힘을 기르기 위해 피아노를 배웠다. 그런데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기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황금의 왼손잡이'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라울 소사의 연주회를 보게 됐다. 라울 소사는 어릴 때는 피아노를 두 손으로 쳤다. 그런데 40대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른손이 마비가 됐다. 라울 소사는 포기하지 않고 왼손으로 풍성하고 멋진 피아노 연주를 했다. 그 모습을 본 희아는 깨달았다.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건 네개 밖에 없는 손가락 때문이 아니라 피아노를 칠 수 없다고 포기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희아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남쪽 사람들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북한 장애인을 돕기 위해 자선 음악회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북한의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보냈다. 희아는 북한도 남한처럼 잘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남통일농업협력회'를 줄여서 '경통협'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강석 농부아저씨는 북한의 장교리에 콩우유 만드는 공장을 짓고 싶어 하셨다. 북한의 장교리에 가셨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깡말라 키도 작은 아이들을 보셨다. 그래서 콩우유 공장을 짓고 싶어하셨다.

콩우유를 직접 보내는 것이 아니라 콩우유 공장을 짓는 것은, 문제의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통일 딸기도 만드셨다. 통일 딸기는 북한에서 모종을 생산하고, 남한에서 키워 남한과 북한이 함께 생명을 키웠다.

어떤 사람들은 피아노를 치고 농사를 짓는 게 어떻게 통일을 위한 거냐고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희아는 자선돕기 음악회를 통해 북한 장애인들을 도와줬고 북한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DMZ에서 통일을 희망하는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어 했다.

전강석 농부 아저씨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콩우유 공장을 지어 북한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 주셨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한 북한과 교류를 하는 것이다. 나도 나의 위치에서 작은 것이라도 북한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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