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6일, 뉴욕타임스(NYT)는 65년 전에 죽은 사람의 부고를 냈다. 이 말도 안 되는 부고의 주인공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100인'에 이름을 올릴 만큼 유명한 세계적인 인물인데도 정작 그가 죽었을 때 부고를 내지 못한 탓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세계 최초의 해커이자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튜링의 공로가 크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知彼知己 百戰百勝)'고 했듯, 전쟁에서 상대의 암호를 알아낸다면 그 싸움은 이긴 거나 진배없다.

1943년 튜링은 콜로서스(Colossus)라는 높이 3m에 달하는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를 만든다. 이 컴퓨터로 독일의 암호시스템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해 낸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1초에 약 5000자를 천공할 수 있는 컴퓨터였다. 암호를 알자 연합군은 독일군의 작전을 훤히 들여다봤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독일군대의 움직임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인데도 NYT에서 튜링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고를 내보내지 않았던 것은 당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로 발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지속적으로 여성 호르몬을 주입해 신체를 중성화시키는 일이었다. 서서히 가슴이 여자처럼 부풀어 오르고 남자로서의 성기능을 상실해 가자 자신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에 빠진다.

1954년 6월7일 그의 나이 불과 42세,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먹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한 미국 애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다. 튜링이 먹다 만 사과 문양이 애플의 로고가 되었다는 것은 우연이든 아니든 의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영국의 새 50파운드 지폐의 초상 인물로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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