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통영을 연결하는 거제대교가 개통되고 나서 둔덕지역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둔덕은 983년에 거제를 통치하던 기성현이 있었고, 1170년 정중부의 반란에 의종 왕이 피신 와서 3년 동안 살던 곳이다.

서해안 지역의 여수·남해·통영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해 살았다. 산방과 농막지역의 고분과 신라시대 축성한 기성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산 좋고 물 좋고 비옥한 토지가 있어서 일찍부터 인류가 정착해 살았다.

둔덕의 생활권은 통영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뱃길로 이용해 왔다. 거제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견내량에서 둔덕까지 비포장도로는 개설돼 있어도 정기적인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거제대교가 개통되면서 차츰 도로를 이용하기 시작했으나 꼬불꼬불하고 협소한 자갈길이라 차가 다니기 어려웠다. 이때 이 길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 확장·포장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 둔덕 옥동마을 이도주씨가 거제군 군의원을 할 때다. 거가대교에서 둔덕 옥동간 도로확장 포장공사는 1985년 1월19일 거제군에서 발주해 삼성건설에서 공사를 시작하는 기공식을 옥동마을회관 앞에서 했다.

사진은 이도주 의원이 축사를 하는 장면이다. 기와집 담장과 도단집 앞에 설치된 우체통과 국기·새마을기·거제군기가 펄럭이고 지방유지와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추운 겨울이라 털모자를 쓴 주민들이 도로가 확장된다고 하니, 이제 시내버스가 올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면서 희망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둔덕은 고종32년 1895년에는 읍내면을 동부와 서부로 분리하고, 서부면에 소랑·법동·산달도가 편입됐다. 둔덕면은 옥동·유지·상서·시목·마장·거림·농막·산방·방하·죽전·어구·녹산·화도·학산마을과 한산도가 둔덕에 속했다.

한산도와 화도가 둔덕에 속해 있던 것이 경술국치 이후 거제군이 통영군에 속해 있다가 1953년 복군할 때 한산도는 통영군에, 화도는 거제군에 속했다. 하지만 한산도와 화도의 생활권과 구역은 대부분 통영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그 당시의 낡은 집과 생활 모습이 그때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 같이 지난날의 추억이 그립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