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거제에서 공증사무소를 연지 어언 9년이 지나고 이제 10년에 접어들었다. 처음으로 소송 업무에서 해방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는데 세월이 흐르니 사무실에 붙어있어야 하는 갑갑함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한 후 30세에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디뎠는데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

변호사 일이란 결국 거의 돈 문제여서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돈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러한 일에 돈을 받고 대신 싸우는 검투사로서의 역할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여러번 시도했지만 결국은 '배운 도둑질'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0여년 전 공증인으로 운좋게 임명돼 공증 사무를 보게 됐다. 이 또한 돈에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지만 미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예방, 또는 생긴 분쟁을 합의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소송이라는 대결 구도 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평화적이다.

그럼 사무실 안에서 어떻게 즐겁게 보낼 것인가? 나의 주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영어와 바둑. 그 전에 거의 매일 치던 테니스는 낮에 밖에 나갈 수가 없고 밤에는 불을 밝혀놓아도 눈이 어두워져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영어로 읽기와 말하기는 뇌의 작동을 부추겨서 쾌감을 준다. 영어로 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 일단 국어를 영어로 해독하는 쾌감과 그 뜻을 이해하는 즐거움이 따른다. 얼마전부터는 필리핀 여자와 스카이프(인터넷 영상통화)를 통해 매일 30분씩 대화하고 있다.

인간이란 동물은 뇌의 쾌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몇몇 알콜 중독자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다른데서 뇌의 쾌감을 얻을 수 없으니 알콜이라는 약물에 의존한다. 담배 중독자도 이와 비슷하니 참으로 불쌍하다. 테레사 수녀·국경 없는 의사회·필리핀에서 의료선교를 하던 박 누가… 이런 희생적인 봉사활동도 결국 그들의 뇌 또는 영혼이 시키는 일이니 만족감과 보람이 다를 것이다.

그러한 숭고한 행위는 아닐지라도 바둑과 영어라는 취미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바둑을 두는 환경도 많이 바꼈다. 담배연기 자욱한 동네기원이 아니라 이제는 인터넷에서 대국을 한다. 특히 인공지능이 등장해 바둑고수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있는 것.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듯' 바둑을 두다보면 그 세계에 몰입해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린다. 돌 하나의 살고 죽음, 한 집 늘어나고 감소함에 일희일비해 매달린다. 국세가 기울어 도저히 회복할 가망이 없으면 세상의 종말이 온 듯 절망하게 되고, 반대로 승세를 확보하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기고만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면 세상은 여전히 혹독하고 현실은 고통스럽다.

최근 읽은 '아니타 무르자니'의 'Dying to be me'라는 영문 책은 '죽어서 내가 된다'는 뜻이다. 책은 여자가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혼수상태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상태에서 의식이 명료해지면서 자신이 누워 있는 병상에서 들을 수 없는 복도에서의 대화까지도 들을 수 있다. 진정한 나는 사랑 그 자체라는 것과 신이란 어떤 존재가 아니라 어떠한 상태 즉 '지극히 사랑하는 상태'가 바로 신이라는 것.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현실이 어쩌면 죽음 이후 한판의 바둑처럼 쓸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하라. 두려워 하지마. 즐겁고 용감하게 살아.'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