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로 외길 인생…재조명 필요
'양달석, 고향 후배들을 만나다' 특별전 후 기념관 건립 추진 재점화

양달석 화백과 그의 작품들

거제를 대표하는 화가 여산 양달석 화백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주춤했던 기념관 건립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회장 권용복)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양달석, 고향 후배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양달석 특별전시회를 열고 여산의 예술혼을 재조명하며 기념관 건립 재추진에 불을 지폈다.

이번 전시회에는 양달석 화백의 작품과 경남·부산지역 젊은 작가 20명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거제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로 꼽히는 양달석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특별전에는 600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 양달석 화백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은 거제에도 이런 대단한 화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지역 예술발전을 위해서라도 양달석이라는 화가에 대해 좀더 알려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양달석 화백이 1957년도에 그린 작품 '잠시'
양달석 화백이 1957년도에 그린 작품 '잠시'.

# 거제의 화가, 여산 양달석은 누구인가?  

거제시 사등면 성내마을에서 태어난 여산 양달석(1908~1984)은 '소와 목동의 화가', '동심의 화가'로 불린다. 목가적인 풍경을 동화 같은 기법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기로 유명한 그의 작품 때문이다.

초등학교 3·4학년 미술 교과서에 '나물 캐는 소녀'라는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그는 50여년에 걸쳐 수많은 미술전·전람회와 36차례에 걸친 개인전을 개최하고 26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면서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1973년 국립 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한국현역작가 100인'전에 작품을 전시했고, 1977년 금성출판사가 만든 '한국현대미술 대표작가 100인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작품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가 태어난 거제에서조차 양달석 화백의 발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다. 1995년 미술의 해를 맞아 당시 문화체육부에 의해 사등면에 양달석 기념 표지석이 세워졌고, 2002년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사곡삼거리에 양달석 그림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이를 아는 거제시민이 많지 않다.

# '양달석 알리기' 여산 양달석 기념사업회 활동

잊혀져 가는 양달석 화백을 기르는 움직임은 지역사회 내에서 시작됐다. 2013년 12월 한국미술협회 거제지부의 주최로 양달석에 대한 세미나가 열려 지역의 관심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2014년 12월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 발기식이 열렸다.

기념사업회는 권용복 추진위원장(거제중학교 교장)을 중심으로 이영준 전 통영시립박물관 관장, 박은주 전 경남도립미술관 관장, 김덕수 전 거제시의회 의장과 유족대표로 양일웅 거제양씨종친회 회장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지역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이사진과 회원 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6년 2월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가 출범식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양달석 알리기'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6년 '양달석 특별전', 2017년 '여산 양달석 오마주展Ⅰ-해석과 방법'과 2018년 '여산 양달석 오마주展Ⅱ-꿈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올해는 '양달석, 고향 후배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양달석 화백의 고향인 사등면 성내마을에서 사생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 측에서는 지자체가 적극 나서서 양달석 기념관을 건립해 문화예술 불모지나 다름없는 거제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용복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거제중학교 교장)은 "국가에서는 양달석 화백 표지석이나 그림비를 세워 인정해주는데 우리 시에서는 지역의 예술가로서 양달석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히 전시회 후원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시가 지역의 대표 인물을 발굴해 문화발전을 일으키는 일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1995년 문화체육부가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거주지에 기념 표지석을 세운 후 서귀포시는 거제시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1996년 '이중섭거리'를 지정·1999년 '이중섭미술관' 개관 등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 이중섭은 제주에 1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가까운 통영을 살펴봐도 화가 한 명의 영향력이 지역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통영의 대표화가는 '전혁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전혁림미술관'은 통영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손꼽혀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고 있다. 

2002년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사등면 사곡삼거리에 세워진 양달석 화백의 그림비.
2002년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사등면 사곡삼거리에 세워진 양달석 화백의 그림비.

# 기념관 건립을 두고 거제시의 입장 번복

물론 거제시가 그동안 기념관 건립에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양달석기념관 건립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시청 공보문화담당관실 이권우 과장(현재 연초면장)이 여산양달석기념사업회와 함께 기념관 건립을 위해 자문을 구하고 양달석 화백의 생가를 여러 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양달석 화백의 생가 부지매입 등에 대한 논의에 나서기도 했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올해 예산에 반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내부적으로 진행이 돼 왔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9월 박형국 시의원이 시의회 5분 자유발언에서 사등면 성내마을에 양달석 화백의 기념관이 건립되면 둔덕의 청마기념관과 함께 거제의 문화벨트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강하게 언급해 기념관 건립 가능성은 현실화 되는 듯했다.

하지만 양달석 기념관 건립은 업무를 추진하던 이권우 과장이 지난해 7월 연초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에 대해 거제시청 문화예술과 정창욱 과장은 "현재로선 기념관 건립이 시기상조다. 양달석 화백이 대중화에 못미쳐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구비조건이 미흡하다는 주장도 있다"고 밝히면서도 "지역 출신 유명 예술인인 만큼 여건이 조성돼 재조명하고 기념관 건립도 검토돼야 한다"고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다.

지역 예술계 관계자는 "양달석 기념관 건립은 예산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지자체 관련 부서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시가 지역의 문화예술을 살려 문화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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