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거제군 농촌지도소 '농번기 탁아소' 모습.   <사진제공 : 이승철 시민리포터>

농기구 없이 인력으로 농사를 지을 때 아이들을 맡겨놓을 곳이 없어서 그 시기만 되면 아이를 돌보는 '농번기 탁아소'가 생겼다.

'농번기 탁아소'는 1961년 아동복리법이 제정돼 탁아시설의 설치기준과 탁아기간의 보호내용 등이 처음으로 규정됐다. 이때부터 지역마다 농번기 때 탁아시설이 생겼다. 새마을사업으로 사회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어린이를 보호하는 탁아시설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1977년에는 탁아소가 전국에 600여개소가 생겼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도시 빈민층과 농어촌 아동 외에 일반가정 아동에게도 개방하게 된 것은 1978년부터다. 이때 탁아시설 운영 개선방안이 생기면서 어린이집은 사실상 중산층을 위한 제2의 유치원으로 탈바꿈 됐다.

1980년 제5공화국이 출범돼 복지사회 건설과 교육혁신이 국정지표로 제창되면서 정부는 1982년 유아교육진흥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기존의 어린이집 691개소와 농번기 탁아소 382개소, 새마을 협동 유아원 263개소, 민간 유아원 38개소 등 총 1374개소를 새마을 유아원으로 통합했다. 탁아소는 임시로 아이를 맡겨 놓는 곳이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어린 아이들을 돌보며 교육시키는 곳이다.

이 사진은 1975년 거제군 농촌지도소에서 운영하는 탁아소 사진이다. 이곳은 상동지역 아래 마을이다. 그 당시는 농경문화 시대로 고현보다 상동·용산이 사람이 더 많이 살았다. 그래서 그곳에 탁아소가 설치됐다.

함석으로 된 단층집이다. 집앞은 다 무너진 돌담 언덕과 울퉁불퉁한 비좁은 흙마당에 어린이 50여명과 학부모가 뒤에 서있는 사진이다.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빡빡 깎았고, 여자아이들은 단발머리에 짧은 옷을 입고 있다. 옷차림부터 다들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

당시 어린아이를 가르칠 교육자가 없었다. 학부모들은 새마을 정신으로 봉사를 하고, 어린이들은 취미생활 할 것이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 보면서 작은 돌로 공기놀이를 하면서 시간만 보냈다.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옛날의 생활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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