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는 삼한시대 변한 12개국 중의 하나였던 두로국(瀆盧國)이란 나라가 있을 정도로 큰 섬이다.

육지와 가깝게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농·어업 문화가 발달해 많은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 집단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에는 물품을 거래하는 장이 있었다.

아주장터와 하청장터가 오래된 것으로 전해져 온다. 하청장터는 연초면 덕치마을이다. 이곳을 장터고개라 한다. 그리고 거제장과 고현장이 있었다. 이보다 앞서 장승포에는 일본인이 들어오고부터 장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장승포의 옛 시장 모습이다. 1970년 초에 촬영한 사진인데 이때만 해도 장승포가 거제의 최고 문화도시로 발전했다.

해안가에 있는 작은 어촌이지만, 거제도에서는 최신문화의 거리로 알려졌다. 시장 한쪽은 그 당시 2층 건물이 있었다. 양복점을 비롯해 해산물 등 생활필수품을 팔고 있다.

시장 주변에는 어린아이를 업은 아주머니와 학생들이 장터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있다. 이때 2층집과 기와집이 있는 장터는 그 시대 현대문화가 급속도로 들어온 곳이다.

장승포란 지명은 해성고등학교 입구에 예전에 마을 수호신으로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부터 장승거리 또는 장승개라고 했다. 장승거리가 한문으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장승포가 됐다.

1889년 한일 통어장정이 된 후부터 일본어민들이 장승포에 많이 정착해 그때부터 일본어촌이 됐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될 때는 일본인이 234호 1893명이 살았다. 1913년 아양리에 이운면을 뒀다. 장승포가 이운면에 속해 있다가 1935년 9월27일 장승포읍이 됐다.

1989년 1월1일 장승포시가 됐다가, 1995년 1월1일 거제시에 편입됐다. 아늑한 자연적인 장승포항은 부산과 일본 대마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런 지형적인 여건으로 일찍부터 외부문화가 유입돼 신흥도시로 발전했다.

장승포 시장이 화재가 나고부터 그 주변이 주택과 상가로 변했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지난날의 생활 모습과 그때의 시장이 옛 추억을 되살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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