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태 편집국장
백승태 편집국장

반갑잖은 가을 태풍이 잇달아 한반도를 내습하고 있어 심기가 불편하다. 올 9월 들어 두 개의 태풍이 찾아와 피해를 입혔다. 10월이 되자마자 18호 태풍 '미탁'이 또 올라온단다. 2주에 한 번 꼴이다.

지난 7일 서해안을 휩쓴 '링링'에 이어 21일는 집중호우를 동반한 '타파'가 강타해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다. 일부 건물이 파손됐고, 어선이 전복되기도 했다. 집중호우로 하수가 역류하고 주택이 침수되며, 수확을 앞둔 벼가 무참히 쓰러지기도 했다.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21일부터 27일까지 둔덕면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9회 '청마꽃들축제'도 취소됐다.

축제추진위원회는 태풍 '타파'가 물러간 뒤 현장을 점검한 결과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절반 이상이 훼손돼 축제를 전면 취소키로 결정했다. 축제를 위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조성해왔던 꽃들이 쓰러지고 꺾여 탐방객을 맞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추진위원회는 축제 취소 현수막을 내걸고 양해를 구하면서 훼손되지 않고 늦게나마 개화하고 있는 꽃들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또 '미탁'이란 태풍놈이 세력을 형성하며 북상한단다. 개천절 휴일을 전후해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다. 올 가을 들어 벌써 세 번째 태풍이다.

우리나라 태풍은 대부분 8월에 발생하지만 9월에 생기는 '가을 태풍'도 많다. 9월 태풍은 한여름 뒤끝에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에너지가 커지므로 더욱 사납고 피해를 많이 입힌다. 1959년 한반도를 할퀸 '사라'도 가을 태풍이고, 거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매미' 역시 가을 추석이 지나고 닥쳤다. '사라'는 전국적으로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여명의 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9월12일 거제를 강타한 매미는 거제시민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상처를 안겨주며 곳곳을 생채기를 냈다. 전국적으로 131명의 인명과 5조원에 가까운 재산을 쓸어갔다.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 상륙 당시 기준으로 가장 강력한 태풍이었던 '매미'는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곤충 매미에서 딴 이름이다.

'매미'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태풍 이름에서 영구 제명됐고, 후에 태풍위원회 총회에서 '무지개'로 재명명될 정도였다. 중심기압 960, 최대 풍속 55m/s의 세력으로 고성군 일대에 상륙한 매미는 각종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가을 태풍이 여름 태풍보다 무섭다는 속설을 증명했다.

'매미'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실감한 가장 강하고 피해가 큰 태풍이었다. 대우·삼성조선소 안벽에 직경 7㎝ 밧줄 여러개로 묶여 있던 초대형 선박이 바람에 떠밀려 방파제와 바위 위에 얹히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거대한 송전탑이 붕괴돼 거제시내 일원이 일주일간 전기와 식수가 끊겨 불편을 겪었다. 당시 아파트에 거주한 필자도 베란다 유리가 강풍에 파손돼 비바람을 맞고 밤을 보내야만 했다. 세살이었던 아들은 울기만 했다. 얼음덩어리를 비싼 가격에 어렵게 사서 전기가 끊긴 냉장고에 채워 넣어야만 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도로와 다리가 끊기고 차량과 농지와 집들이 침수되고, 일운면 와현마을은 대부분의 가옥이 파손되는 등 폐허가 됐었다. 양식장과 비닐하우스도 사정없이 휩쓸어갔다. 해일과 집채만한 파도가 해금강을 봉우리를 넘어 반대쪽으로 몰아쳤다느니, 와현에서 시멘트블록이 날아다녔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유독 거제와 남해안 일대에 피해가 컸다. 거제 전체가 아수라장처럼 변해 전국 각지에서 복구지원과 생필품 지원이 잇따랐다. 문명의 이기가 편리하고 고맙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자연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그러나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었던 장목면 대금마을 해안가엔 한 개인이 혼자서 화강석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화강암 성채인 '매미성'을 쌓아 현재 거제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미탁'이 올해 마지막 태풍이길 바라며 피해없이 무사히 비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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