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꽃은 식물의 진수요, 식물의 일생에서 절정을 이룬 결과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식물은 세 계절을 인내와 역경을 견딘다. 한 그루의 식물이 자라서 꽃을 피워낸다는 것은 그 식물의 생이 성공했다는 반증이다.

좋은 꽃의 조건은 색깔과 향기·모양이다. 세 박자가 맞아야만 좋은 꽃이라 할 수 있다. 꽃은 화단이나 들판·산야에도 핀다. 그러나 곱게 화분에 길러서 선물하는 꽃은 특별하다.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키운 꽃이기 때문이리라.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의 연속이다. 첫 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마주치면서 살아간다. 이를 인연이라 했던가. 세상을 살다보면 온갖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금융기관에 근무하면 더욱 그렇다. 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것임에랴.

지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서울 금융의 일번지인 여의도의 지점,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경쟁이 제일 치열한 곳이다. 본사 사옥 1층에 여의도지점이 세들어 있다. 2003년 1월말에 부임해 업무를 챙기기 시작했다. 지점의 규모와 업무관리를 생각하니 어리벙벙했다.

부임 후 한 달을 조금 지나 건물주인 이 공기업의 이사장이 새로 부임해 온다고 했다. L 이사장, 얼마나 반가운 이름이며 기쁜 소식인가. 40년 전부터 아는 고향선배다. 행정 관료로 고위직에 있다가 퇴임하면서 부임하는 것이다. 비서실에 연락을 해서 면담을 요청했더니 일정이 바빠 시간을 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L 이사장이 취임식을 마치고 정부 부처에 인사하러 나가다가 1층 지점으로 들어왔다. 내가 있는 지점장실에 들려서 차를 한 잔했다.

"H 실장, 축하화분 중에서 제일 좋은 꽃을 여기 김 지점장 방에 갖다놓아 줘요"하고 얘기하고 나가는 게 아닌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손수레에 실은 커다란 연산홍 화분이 지점장실로 운반돼 왔다. 나는 이 화분을 은행 객장에 배치했다. 분홍색 연산홍이 지점에 향기로, 화사한 색깔로 지점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그러고 3개월쯤 지나자 예수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향백리, 인향만리'라고 했다. 좋은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좋은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일 게다. 좋은 사람의 향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좋은 사람의 향기는 다른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향기 나는 사람이란 사람을 물질로 평가하지 않는 인간 존엄성의 구현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L 이사장'이 그런 사람이지 싶다. 고향선배로 고위 공직에 올랐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겸손하고 성심성의껏 대하는 것을 보면 후천적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났지 싶다. 이분은 남을 돕고는 이를 잊고 산다. 그리고 이를 상기할라치면 "그런 일이 있었나?"라고 웃어버리고 만다. 만남을 소중이 여겨 대접하기를 좋아한다. 식사라도 대접하러 왔다가 오히려 대접받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분의 생활신조는 '삼실'이다. 삼실 정신인 '진실(眞實)·성실(誠實)·절실(切實)'의 생활철학을 닮아가고 싶다.

고희가 지났음에도 10년 넘게 인천의 어느 대학교를 맡아서 일취월장 발전시켜 교육계의 전설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점과 미래의 발전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피력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삼실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향의 깊이를 척도화 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행한 덕행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톺아보고픈 생각이 든다. '제일 좋은 꽃'의 가치는 그 꽃의 단순한 쓰임새에 있지 싶다. 좁은 공간에 그냥 두면 소수가 향을 즐기고 감상하는 가치밖에 안 되리라.

'제일 좋은 꽃'을 선물 받고, 화향은 물론, 그의 인향이 널리 퍼지게 은행 객장에 내다 놓았다. 내방하는 고객들에게는 물론, 여의도에 화향과 인향이 가득하리라. 아니 온누리에 퍼져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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