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우 전 거제시 어업진흥과장
남선우 전 거제시 어업진흥과장

한창 더위가 물러갈 즈음인 8월 중순경에 5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아내와 바닷바람을 쐬러 남부면 주요관광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해수욕장은 물론이고 이름난 휴양지들이 모두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점심때고 하여 가까운 곳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했다. 점심 메뉴는 후배가 경영하는 식당의 짬뽕으로 정했다. 식당은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하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는 터라, 한산했던 관광지와는 달리 손님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후배는 대뜸 "형님 잘 왔습니다. 이거 어떡해야 됩니까?" 하고 영문도 모르는 질문을 내뱉었다. 자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고, 하소연을 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끝말부터 먼저 던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형님, 이러다 다 죽게 생겼습니다. 나하고 선단을 꾸려 조업하던 동생들이 4명이나 배를 당거라 맸습니다. 나는 이 장사라도 하니까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말이 아닙니다."

그가 던진 말의 요지는 현재 어촌살림이 어렵고 어려움에 처한 현 실태가 '사회가 돈을 쓸 수 없는 구조로 변하게 된 것'으로 지금의 난간을 피할 돌파구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 첫째, 어황이 불안정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 원인도 있지만, 어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어가가 떨어져 제값을 못받으니 고기를 잡아도 적자다. 그것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가계소득의 균형을 깨지게 만든데에 원인이 크다는 지적을 했다. 근무시간이 적어지면서 노동력을 늘릴 수 없는 까닭에 벌이가 시원찮고, 가정경제가 빈약하니 돈을 쓰지 않게 된다. 생활이 넉넉해야 고기도 먹어주고 어가도 좋아진다는 설명이었다.

둘째, 최저임금 인상의 일괄 적용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뜻도 비췄다. 요즘 농어촌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를 일꾼으로 쓰는데 임금이 높아져 힘껏 고기를 잡아도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적어도 내 인건비는 나와야 되는데 조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만 남는다. 근로자가 더 주인인 셈이다. 그러니 배 당거라 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배들은 '채권으로 압류당하고 다 나앉아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참담한 듯 내뱉는 끝말이 할 말을 잊게 했다. 어촌실정의 속을 들여다보면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형편은 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소형어선 어업은 유류비 등에 정부지원이 없으면 생산비용이 높아 채산성을 절대로 맞춰 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어촌인력은 다른 산업으로 전업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럼 어업을 '왜 하나?'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1차 산업의 농어업은 국민경제에 불가결한 산업으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야 유지되는 특수산업 분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어촌이, 모든 어업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부의 관심 밖에서 이대로 계속 간다면 일부 업종 중 특히, 소형어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어선 업자들은 머지않아 파산의 길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 심히 우려된다.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 소득을 증가시키면, 그들의 소비가 늘어나게 됨으로써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이론이다.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의 대표적인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인데, 이 두 정책이 어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그 시사점을 찾아보는 어촌 확대경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며칠 전 '기획재정부의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경제의 시계가 불투명해지고 있고,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해, 가용재원을 총동원해 경제활력의 불씨를 되살리고, 경제체질을 강건히 하는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국가재정이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 기조로 예산을 편성 총지출 규모는 513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9%이상 늘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지출예산 정책을 살펴보면 어업인의 생활보장을 위한 요지는 특별히 없어 보였다. 타국과의 경제 전쟁에 따라 시급한 사안을 다루다보니 미처 생각지 못한 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신성장, 연구개발, 소재·부품·장비 분야 등을 확실하게 지원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현 경제 상황에 무방비 상태인 어업인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처방전을 제시한다면, 경제회복 시까지 이자를 감면해주는 정책 등을 시급히 구상해 주길 권한다. 또한 어업생산 비용의 절감, 생산기반지원 비율 확대정책 등도 필요한 부분이다.

어업인들이 바라는 좋은 정책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힘닿는데까지 일하며, 고향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살맛나는 어촌은 정부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대되려면 사각지대에서 소외되고 있는 어업인의 구조적 문제점도 면밀히 파악해 유례없는 슈퍼예산이 적절히 쓰이게 하는 것이다. "힘냅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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