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얼마 전에 지인과 상동에 있는 음식점에 갔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하게 내렸는데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보니 거리 밑에서 작은 강아지 세 마리가 무리지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세 마리 다 유기견들 같았다. 목줄도 없고, 다들 버려진지 오래인지 몰골들이 꾀죄죄하고 깡말라 있었다. 강아지들은 내 곁을 지나면서도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비 오는 거리에서 쓰레기봉투의 냄새를 이리저리 맡으며 어디론가 무리지어 가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참 심란했다.

유기견이 버려지는 것은 유독 여름이 심하다. 특히 거제도는 섬이라 여름에 바캉스를 온 외지 사람들이 강아지도 함께 데려와서 여기에 유기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올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기동물들의 정보를 나누는 '거제 유사모'에 하루가 멀다 하고 유기동물들 소식이 올라와서 정말로 안타까웠다.

예전 어렸을 때 마당 한 구석에 1m도 채 안 되는 끈에 묶어서 키우며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동네 똥개를 떠올리면 좀 곤란하다. 그 개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인간에게도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충성·의리·애정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도 개를 키우면서 알았다.

얼마 전에 안 사실이 또 있다. 나는 진돗개 두 마리를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데 어떤 날은 개들이 현관 앞 데크에서 자고 또 어떤 날에는 대문 앞에 내려가서 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날씨 때문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집안 쓰레기를 정리해 종량제봉투에 담고 대문밖에 내놓으려 내려가자 데크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두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 나를 따라오더니 그 시간 이후로 대문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 개 두 마리는 내내 대문 앞에서 잤다. 그 다음날 밤에 보니 다시 데크에서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는 두 녀석. 그러다 며칠이 지난 다음 내가 다시 종량제봉투를 들고 마당을 내려가니 다시 어슬렁 따라 내려오는 두 녀석, 대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대문에서 밤을 새우는 듯 했다.

그날 새벽, 일찍 잠이 깨 마당에 내려가 보니 아직도 진돗개 두 마리는 쓰레기봉투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발사하며 대문 앞에 앉아 있었다. 밤새 안자고 쓰레기봉투를 지키는 것이 확실했다. 아침이 밝아 쓰레기 수거하는 분들이 대문 앞에 내놓은 종량제봉투를 가져가자 두 녀석이 맹렬하게 아저씨들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우리 물건을 가져 간다고 아주 난리를 치며 온 동네가 쩌렁쩌렁 하게 짖어댔다.

주인이 뭔가를 대문 밖에 내놓으니 그걸 지키느라 밤새 대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개들이 쓰레기가 뭔지 알 턱이 없으니 일단 주인의 체취가 묻은 물건은 무조건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똥개라고 말하는 이런 동네 개들도 충성스럽게 자기 집 물건을 지키느라 밤을 샌다. 그런데 거제도에 버려지는 개들은 대부분 이름 있는 개들이다. 그런 애들은 우리 집 개들보다 더 영리할 것이고 더 똑똑해서 주인이 자기를 버리는 것, 심지어 주인의 감정까지도 읽을 것이다. 그래도 버려야겠는가. 그건 일종의 배신이다. 그것도 음흉하게 먼 섬까지 와서 자식처럼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가는 것은 인간으로는 할 짓이 못된다. 개를 키우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개들에게도 슬퍼하는 감정과 기쁨과 절망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아,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도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이를 어쩌냐. 새벽에 비 온다는데 또 밤새 비 맞고 쓰레기봉투 지키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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