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홍 거제바른이치과 원장
이수홍 거제바른이치과 원장

보건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어려움이 따릅니다. 보통은 국가 단위, 작게는 지역 사회 단위로 시행되는 보건 정책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수립돼야 하는 정책 당위성을 충족시키면서도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치과질환 중 가장 대표적인 치아우식증(충치)의 경우 국가의 개발 수준에 따라 흥미로운 패턴을 보입니다. 1인당 1일 임금의 수준이 1~2달러 수준인 하위소득 국가의 경우는 치아우식증 발생율이 굉장히 낮습니다.

해당 국가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칫솔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매우 비싸고 귀한 물건입니다. 당연히 구강 위생 관리에 대한 개념도 낮습니다. 그럼에도 충치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단음식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기 때문입니다. 정제된 탄수화물 섭취가 적은 상황에서는 특별히 구강위생 관리 노력을 하지 않아도 치아우식증은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치아우식증의 발생률 및 치아 상실율은 중위소득 국가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단음식 섭취는 늘어나는 반면 구강 관리 지식 및 수준 높은 치과 치료의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국을 포함한 유럽·북미·동아시아 일부 국가와 같이 소득 수준이 높고 생활이 비교적 윤택한 국가에 진입하게 되면 해당 수치는 다시 유의미하게 감소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치과 보건정책 중 하나로 수돗물 불소화(상수도 불소농도 조절)사업이 있습니다. 사실 이 정책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매우 효과적인 치아 우식증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극히 저농도의 불소를 수돗물에 포함시키면꼭 수돗물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입을 헹구는 행위 등을 통해 치아 표면에 불소 이온이 침착되고 이는 치아의 에나멜질과 반응해 플루오르아파타이트를 형성함으로써 에나멜질의 내산성을 높여 부식을 예방하게 됩니다.

거제시의 경우에도 상수도 불소농도조절 사업을 10여년간 시행하다가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근거 제시 및 활발한 토론을 통해 사업 중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여러가지 입장들이 있었겠지만 치과 의료 종사자로서 매우 효과적인 예방 수단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가 있는 것에 대해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방접종 안하고 아이 키우기 운동' 같이 반칙을 통해 다수 대중의 건강을 위협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행태의 경우와 '상수도 불소농도조절 사업'은 '이 사업이 꼭 필수적인가'라는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건 예산이 충분치 못하고 우식발생율이 높은 중위소득 국가에서는 비용 대비 효용이 매우 큰 사업임에 분명하나 다양한 불소제제를 개인이 직접 선택해 사용할 수 있고, 치과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상위소득국가에서는 상수도와 같은 공공재에 첨가물을 넣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도 미국·유럽 등 여러 상위 소득국가에서 사업시행의 범위가 점차 축소되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 사업을 중단하더라도 저농도 불소의 안정성에 대한 교육 홍보 및 기존 치과병·의원 및 보건소 인프라를 활용한 적극적인 치과 질환 예방 교육 등이 강화돼 치과예방 분야가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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