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나는 집 근처 공원에 잠시 차를 세웠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네 꼬마들의 야구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1루 수비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 점수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아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14:0으로 지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넌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아 보이는구나." 그러자 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절망적이라구요? 왜 우리가 절망적이어야 하죠? 우린 아직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요."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기업 CEO이며 소설가인 미국의 잭 캔필드가 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국 축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것은 히딩크 감독의 공로가 크다. 그런데 월드컵 전까지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이었다. 월드컵 1년을 앞두고 프랑스·체코에게 잇따라 5:0으로 져서 붙은 별명이다. 그런 비난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강한 팀과 붙어야 강해진다는 신념을 믿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꼴찌를 했던 여자 1m 스프링보드 선수 김수지가 이번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메시지다. 여자수구 팀은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헝가리 팀에게 0-64로 대패했다. 본래 우리나라에는 수구팀이 없었다. 이번에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자 대한수영연맹이 지난 5월 긴급하게 선수를 모집했고, 그 결과 중학생 2명, 고교생 9명, 대학생 1명, 일반부 1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수구대표팀이니 그럴 만도 하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우리나라가 헝가리 팀에게 0-9로 패한 뼈아픈 기록이 생각난다. 마침내 2차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1골이 터져 1:30으로 졌다.

그날 선수들과 응원단은 1승이 아닌 한 골에 환호의 눈물을 흘렸다.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다. 최고가 아니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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