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태 편집국장
백승태 편집국장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70여 년 전 발간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역작 '국화와 칼'이 또다시 회자된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미국 국무부가 일본의 문화와 민족성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집필을 의뢰해 2년만에 출간된 이 책은 일본인의 이중성을 얘기하며 일본을 가장 객관적으로 기술한 저서로 평가된다.

저자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에 대해 '앞에 내보이는 한 손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국화를 들고 있으나 감춰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고 정의했다. 이중성에 대해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인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민족'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겉 표정은 국화처럼 평화를 내세우지만 어떤 서운함이나 모욕이 있을 경우 벼르다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뽑아 복수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는 느낌이다. 일본인의 사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고 비록 외형적으로 발전하고 생활환경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예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최근의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보복에서 그들의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새삼 이 고전을 거론하는 것은 책을 통해 일본의 숨겨진 내면을 알고, 한일관계를 슬기롭게 대처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전 국민이 분노에 휩싸이며 불매운동 등으로 강하게 맞서고 있고,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거제시는 일본여행뿐 아니라 교류사업 또한 중단을 선언했다. 자매결연 관계인 후쿠오카현 야메시에 청소년 20명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취소했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 민간단체와 기업들도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 등으로 일본의 비열함에 맞대응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을 빌미 삼아 수출규제를 가해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는 일본의 지극히 못난 이중성을 깨부수기 위한 하나된 마음의 표출이다.

무역도 전쟁이다. 부당한 싸움을 걸어왔다면 당당히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피치 못할 전쟁이라면 비록 힘들고 상처를 입더라도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거창한 정치와 경제논리 이전에 부당한 괴롭힘은 힘을 다해 뿌리쳐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졸렬한 싸움을 걸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이 경색된 한일관계 속에 의미 있는 일본방문단이 최근 거제를 찾았다. 일본인과 재일교포로 구성된 일본의 시민단체인 '노 모어(NO MORE) 왜란 실행위원회' 회원 17명이 왜란의 격전지였던 칠천량해전공원을 방문해 일본의 과거 침략사를 사죄하며 고개 숙여 반성했다.

역사학자이자 이 단체 대표인 가와모토 요시아키는 침략의 역사로 한국민에게 고통을 드린데 대해 반성하면서, 최근의 경제보복도 비뚤어진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300년 전의 조선침략을 진정으로 반성했다면 근대 일본의 침략사(2차대전)는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을 자학사상이라고 부정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구실 아래 배외주의와 소수자 차별과 적개심을 부추기고 국민을 대외전쟁에 동원하려는 위험한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임진왜란 격전지인 거제와 부산·진주·통영 등지를 찾아 과거사를 반성하는 행사를 갖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미래도 있다는 그들의 조용하고 용기 있는 외침이 새삼 뇌리에 꽂힌다. 평화를 위장하고 남에게 해코지하는 국화와 칼이 아니라 향기를 내뿜으며 평화를 추구하는 국화와 칼이 되길 바라는 기대가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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