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국왕 쥬라롱은 열살 난 아들의 황태자 즉위식을 위해 1887년 메남강 가에 50만불을 들여 황금사(黃金寺)를 세웠다. 이 사원은 네개의 작은 탑으로 에워싸고 있고, 황금의 판자와 보석류로 장식됐다. 사원 한 가운데는 대리석과 금으로 된 목욕탕이 있는데 황태자로 즉위하기 전 이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목욕탕은 황태자가 단 한번 쓰고 난 뒤에는 영원히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목욕은 청결이나 미용·건강·치료의 목적으로 이용되지만 종교적 또는 의식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 역사 기록상 목욕이 등장하는 첫 사례는 신라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의 신화다. 박혁거세는 뭇사람들이 놀랄만큼 아름다운 남자였는데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한다. 알영은 몸매와 얼굴이 남달리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의 벼슬과 같아 북천(北川)에 데려가 목욕시키자 벼슬이 떨어져 나가고 완벽한 미인이 됐다고 한다.

김수로왕의 탄강도 목욕과 관계가 있다. 서기 42년 3월3일 계욕일(계浴日:액을 없애기 위해 물가에서 목욕하며 노는 날)에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갔더니 하늘에서 내린 오색줄 끝에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에 알이 담겨 있었는데 가장 먼저 알에서 탄생한 사람이 수로(首露)였다.

물이 가지는 정화기능을 이용해 심신을 물에 담가 몸과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버리는 일은 특별한 종교의식 및 습속으로 행해지고 있다. 불교의 관정(灌頂), 기독교의 세례(洗禮)나 침례의식, 힌두교인이 인도 갠지스 강에서 행하는 목욕의식 등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의식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목욕재계라는 절차를 가졌다.

신라시대부터 음력 6월 보름인 유두(流頭)가 되면 계곡과 냇가에 가서 목욕하고 물맞이를 한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목욕문화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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