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스님/대한불교 법화종 옥련사 주지

원칙을 지키는 것과 유연성을 지니는 것은 같이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이를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했다. 원칙에만 사로잡혀 유연성을 잃는다면 경직되어 목적을 이루기가 힘들다.

한편, 유연성만 추구하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목적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원칙을 가지고 순간순간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리더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북방민족의 흉노에 ‘모돈’이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이웃 나라인 동호에서 왕이 애지중지하던 말을 달라고 요구해 왔다.

신하들은 이 무래한 요구에 대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왕은 “그까짓 말 한 마리 때문에 사이가 나빠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말을 이웃나라로 보내도록 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왕의 애첩 한 명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신하들은 격분하여 당장 이웃나라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왕은 이렇게 말했다. “애첩 한 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애첩을 이웃나라로 보냈다.

이렇게 되자 이웃나라는 점점 더 방자해져 양국의 경계에 있는 황무지를 자신들이 갖겠다고 했다. 이 황무지는 양국의 중간을 가르는 완충지대로 사람이 살지 않을 뿐 아니라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지였다.

신하들은 이 땅은 별 필요가 없으니 그냥 넘겨주자고 했다. 하지만 왕은 이전과는 달리 몹시 화를 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땅은 나라의 기본이다. 말이나 첩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그러나 땅을 달라는 것은 나라의 일부를 넘겨 달라는 것과 같다. 이는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무례한 요구이다.”

왕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고, 이웃 나라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리더가 부하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다양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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