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자 계룡수필문학회원

고민이다. 병문안을 가야하는데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집 앞 도로를 건너면 계룡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입구에서 오십여 미터 오르다보면 오른쪽 편으로 길을 터놓아 병원과 연결시켜 놓았다. 이 길이 나에게 있어선 지름길이다.

물어보면 모두들 지름길을 선택하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장이 입구에 턱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가보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 크게 먹어본다. 갔다 와야 할 시간이 촉박해서도 그렇고, 한번 길을 터놓으면 다음번에는 눈 질끈 감고 지나칠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에 다다르니 화환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고 청초하기만 한 국화가 오늘 따라 슬프게 느껴지는 것도 죽음과 연관된 곳에 서 있기 때문일 게다.

어떤 분이 가신 걸까. 호상이었음 좋으련만. 사고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젊은 분이 아니었으면 더더욱 좋겠다.

곡하는 소리가 들리려니 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조용하다. 문상객과 상복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 말고는 초상집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 분위기다.

응급실에 들어선다. 친구 어머니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골절되었다면 큰일이다. 연세 많은 노인들은 뼈를 다치면 쉬 낫지 않아 애먹는다던데.  안으로 들어서니 북새통이다. 아이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신음소리가 뒤섞여 들리고, 사고경위를 설명하느라 주변 사람들의 얘기소리도 만만찮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응급환자들을 돌아보느라 황급하다.

친구도 ,친구 어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침상을 둘러보는데 누군가가 간호사를 부른다. 다급한 모양이다. 네댓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환자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있다. 의식이 없는 모양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잠시 멈추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지막인가 싶어 가족들은 애가 탄다.

불러도 보고 흔들어보지만 반응이 없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눈을 떠 보라며 애원을 한다.
그렇게도 찾던 아들이 왔는데, 왜 손을 잡아주지 않느냐며 눈물을 훔쳐낸다. 큰아들인 모양이다. 딸도 숫제 노인을 붙들고 통곡한다.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을 알고서 제발 깨어났으면 좋겠다.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는 소리가 너무 슬프다. 처절하다. 꾹 참으려 했는데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방울이 맺힌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라면 찢어지는 아픔일 게다.  그 사이 친구 어머니는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다. 걱정한 대로 뼈가 골절되어 두세 달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입장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 한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가족과 지인들의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쾌차할 것이다.  그러나 앞전 응급실에서 뵌 그 분은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환자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사투를 벌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치열한 접전에 또 접전이다. 한 가닥 가늘고 여린 생명 줄을 부여잡고 살아남으려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늘 같이 붙어 다닌다. 안간힘으로 끝까지 생명 줄을 쥐고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고, 힘들다 놓아버리면 이승과 이별인 것이다.
그것을 오늘 나는 병원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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