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아내가 "오늘 퇴근하자 말자 바로와서 시장에 같이 가요. 며칠 후 제산데 장볼게 많아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 서둘러 책상을 정리했다. 그런데 과장이 한다는 말이 "어이, 김 계장. 오랜만에 야근도 없는데 소주 한잔 어때?"

직장상사의 제안에 김 계장의 고민은 깊다. "오늘은 안됩니다. 아내와 시장에 가기로 했거든요" 하고 단박에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말했다가는 쪼다에 병신소리 듣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직장에서 왕따 당하고 만다. 그러니 아내와의 선약을 포기하고 동료들과 술자리에 나갔다가 밤이 늦어서야 귀가한다. 아내의 잔소리에 한동안 가정의 평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럴 때 프랑스 남편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를 거절한다. 가정이 직장보다 우선이고, 가족과의 약속이 직장상사의 말보다 우선한다. '삼식이'가 있고 '영식이'가 있다. 하루 세끼 밥을 챙겨 먹는 사람은 삼식이고, 늘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은 영식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위가 높아 사교생활이 늘어도 가정생활에는 철저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위가 높을수록 집을 비우고 집에서 밥 먹지 않는 것이 자랑이고, 자신의 능력이라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홉살 어린이가 쓴 '아빠는 왜?'라는 시가 인터넷에 실린 적이 있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예뻐해 주셔서//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 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식교육을 당연히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인성교육은 가정이 책임진다. 우리처럼 학교가 자식교육을 포기하고, 가정이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구조에서, 아버지마저 냉장고나 강아지보다 존재감이 없으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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