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진돗개 누렁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나는 개 산책을 핑계 삼아 운동을 한다. 언덕에 있는 우리 집에서 개를 데리고 나와 동네길을 내려오다 보면 왼쪽에 공터가 있는데 언제부턴가 거기에 백구 한 마리가 묶여져 있었다.

백구는 나와 우리 개를 보면서도 짖지도 않고 물끄러미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매일 봐도 닭 소 보듯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것 같았다. 늘 묶여있는 것이 안쓰러워 한 번씩 우리집 개들이 먹는 간식도 던져주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내가 주는 것은 의심하지 않고 다 받아먹을 정도의 신뢰감이 쌓였다. 매우 흐뭇했다.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갔는데 백구 근처에 다가가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보고 짖은 적이 없던 백구가 맹렬하게 짖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보니 백구 옆에 덩치가 조금 작은 떠돌이 암컷 개가 한 마리 있었다. 그 녀석은 유기견 생활이 오래인지 몰골은 꾀죄죄하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바로 그 떠돌이가 우리 동네 백구 옆에 자리를 잡아 아예 백구의 사료를 같이 먹고 백구의 물그릇에 있는 물을 마셨다. 떠돌이 개의 출현으로 하루 종일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백구의 삶에 활력이 생긴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프로그램에서 폐쇄하는 개농장을 방문해 개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한 출연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지킬 것이 없는 개는 짖지도 않습니다." 열악한 개농장의 뜬장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개들은 지킬 것이 없기 때문에 짖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학대한 주인도 주인이라고 꼬리를 흔들고, 몽둥이로 맞아도 주인 앞에 엎드리는 개들이지만 그나마도 지킬 것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욕이 없어져 짖는 것마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동네 백구의 무료한 삶에 떠돌이 개가 들어와 의지할 것 없던 둘은 친구처럼 의지하며 서로 보살펴주며 위로가 돼줬던 것이다. 그래서 평생 짖지않을 것 같던 백구는 친구를 지키느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개들을 보며 맹렬하게 짖어댔고 백구의 눈은 굳은 결의로 빛났으며, 얼굴 근육은 떠돌이 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로 마치 투견이었던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기자 삶에 활력과 생기가 생겨났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누가 지나가건 말건 개의 본분인 집지키며 짖는 것조차도 거부하며 살다가 지킬 친구가 생기자 맹렬히 짖어댔던 백구의 부활이 반가웠다.

그런데 지난주 얼마 전까지 그렇게 맹렬하게 짖던 백구가 다시 세상 다 산 것처럼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아예 내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떠돌이 친구가 사라진 것이다. 지킬 것이 없어진 백구는 다시 무력한 일상으로 돌아와 하염없는 절망의 몸짓으로 턱을 땅바닥에 대고 멍 하니 누워만 있었다.

"지킬 것이 없는 개는 짖지 않는다." 나는 종일 힘없이 엎드려 자는 백구를 보면서 사람이나 개나 지킬 것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삶에 의미와 활력이 없어져 얼굴 가득 우울함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았다.

아, 이 시점에서 내 삶을 돌아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나도 누렁이 개 두 마리 외엔 아무것도 지킬 것이 없는 삶이 아닌가. 거 참.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