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몇 해 전부터 작은 농지를 마련하여 텃밭을 일구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먹을 것과 책 몇 권을 싸서 도망치듯 농지에 마련된 컨테이너 하우스로 달려간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 마시던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풍경이다. 나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놀랍다.

지난 가을에는 산림조합에서 나눠 준 도라지와 더덕 종근을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지지대 끝자락가지 자란 더덕 잎이 하늘거린다. 더 긴 지지대를 다시 세워주어야 하나 고민하다 문득 내가 못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더덕이나 도라지를 밭에 심어서 대량 수확할 필요가 없었다. 야생에서 자란 더덕이나 도라지를 자주 접할 수 있었고 필요할 때 요긴하게 수확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밭 구역을 정하고 일정하게 규격 잡힌 모양대로 자라나는 더덕 잎을 보면서 뿌리가 얼마나 튼튼할 것이며, 그 향이 어찌 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엊그제 한 모임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설거지를 시켰는데 자녀가 학대받았다고 고발을 하면 부모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였고 그래서 경남도의회 본회의에 안건이 상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학생들이 性的으로 문란해질 수 있고 교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을 망치는 법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설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학생들이 사람 대접받으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자는 것일 텐데, 되려 인권조례에 성적문란을 조장한다든지 교권을 무너지게 할 조항이 들었겠냐며 조심스럽게 대들었다가 조례 내용을 봤냐는 소리에 망신만 당했다.

다음 날 학생인권조례 전문과 관련 자료를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전자문서로 받아 시간을 내어 읽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경기·광주·서울·전북에서 이미 제정되어 있다. 경기도에서는 2010년 10월5일부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헌법과 아동청소년보호법,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그리고 국제인권조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학생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뭐, 모든 법이나 조례들이 취지는 그럴싸한 구석이 있어야 되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정말 조례 가운데 상식과 어긋난 강제규정이 있는지, 소문처럼 성적문란을 조장하는 내용이 있는지, 학생의 의무는 사라지고 교권이 심각하게 무너져 교육이 황폐화된다든지 하는 조문을 찾아봐야 했다.

조문에서 가장 많이 나열돼 있는 단어는 ‘보호’와 ‘존중’, ‘배려’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신체적, 성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차별행위 금지, 다문화가정 학생 등 소수자에 대한 교육적 배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가족관련 개인정보 보호, 임신한 학생에게 자퇴를 강요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교육환경 조성과 지원 우선(이 조항을 두고 성적문란 조장이라 함),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반장을 할 수 없게 하는 평등권 차별행위 금지, 강압적인 체벌이 아닌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방법 등 학생을 단순한 교육 대상이 아니라 인격권의 독자적 주체로서 성인과 마찬가지로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내가 학생시절 지각을 했거나 교칙위반을 했을 때 수업에 들어갈 수 없었고 화장실 청소나 운동장을 계속 뛰어다녀야 했었다. 그것도 전교생이 다 보는 가운데 말이다. 조례에서는 학생지도 과정에서도 수업참여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일방적인 야간자율학습 강요는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학생의 의견을 무조건 배제하지 말자는 것이고, 교복착용이나 머리모양·무단이탈·지각 등 교칙위반사례를 적발, 지도해 면학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힌다.

다만, 두발과 복장을 합리적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 전체가 소지품 강제 검사를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인가 싶다. 학생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집단적이거나 일괄적 단속 형태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학생이 교칙에 반하는 물건을 소지한 것으로 의심되면 엄중한 조치나 선도처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 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학생의 학습권 및 건강권 보호, 징계 사실의 공표금지,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금지 등의 내용도 있다.

인권조례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심각한 수준이다. 조례가 성적문란 야기나 교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세부내용을 읽어보지 않은 몰이해로 인한 가짜뉴스다. 학생도 사람이고 사랑스런 내 아들, 딸들이며 늙어가는 우리를 보호해 줄 미래의 주역들이다. 경남학생인권조례가 15일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6대3으로 부결됐다. 3열로 균일하게 자라나는 더덕과 도라지의 일정한 키 높이와 색깔에 미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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