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거제포로수용소, 유네스코 등재와 관광자원화②]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는 왜 발족했나
시,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 결성...국내·외 자료수집 본격화
국내, 시·국가기록원·육군기록정보관리단·전쟁기념관·독립기념관
국외 영국·프랑스·네덜란드·미국 등 공동등재 추진

거제포로수용소는 6.25 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부터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됐다. 1951년 6월 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명, 중국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3000여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이곳에서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고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은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이 가능한 전국에서 손꼽히는 장소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음에 따라 현재 거제시는 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진행 중에 있다. 포로수용소의 위상제고와 문화자원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역사학자는 "포로수용소 아카이브 센터 건립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기록물 3만7232장은 미국·유엔기록보존관리부 등 전세계에 분포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기록물 수집 현황을 찾고 거제포로수용소와의 연계성을 찾아 기록물을 분리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 거제포로수용소의 기록물로 확인되면 세계 곳곳에 분포돼 있는 기록물이 함께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해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제 이전에 등재해온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이들 모두 기록유산이 되기까지 범시민운동이 펼쳐졌고 전국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를 위해 거제신문은 시민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적 배경과 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야 하는지 당위성에 대해 보도하고 범시민운동 캠페인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예정이다. 거제 이전에 기록유산 등재를 해온 비슷한 주제의 기록을 가진 지자체와 선진 사례를 방문해 어떠한 시민운동과 정책이 펼쳐졌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또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사후관리를 통해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지자체와 세계 선진 사례를 찾아가 거제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항에서 부족한 점과 배울 점을 알아본다.   - 편집자 주


6.25 전쟁 이후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는 한 뼘 차이였다. 사진은 1951년 7월19일 피난민 남성이 양손을 위쪽으로 올리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검사받고 있다. 오른쪽의 헌병은 짐을 풀고 있고 왼쪽의 병사는 '포로'라고 적힌 인식표에 무언가를 적으려 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보관.
6.25 전쟁 이후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는 한 뼘 차이였다. 사진은 1951년 7월19일 피난민 남성이 양손을 위쪽으로 올리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검사받고 있다. 오른쪽의 헌병은 짐을 풀고 있고 왼쪽의 병사는 '포로'라고 적힌 인식표에 무언가를 적으려 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보관.

지난 2015년부터 거제시민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선진화에 대한 요구가 들끓었다. 세계 유일의 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잔재하고 있음에도 역사적 가치를 활용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제시는 그해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및 잔존 유적지 포로수용소 터를 답사했다. 다음 달인 7월 국내·외  학자들은 "포로수용소 아카이브 센터 건립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다음해인 2016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게 된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등재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데에는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의 가치가 크게 두 가지가 높기 때문이다.

첫째는 진본성이다. 18개국 43개 기관에 소장된 기록물들은 1950년 6월25일부터 6.25 전쟁기 자원송환원칙을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물들은 1차 자료이자 원본이고, 생산 맥락뿐 아니라 각국 아카이브에서 영구 보존돼 오고 있다.

아카이브는 분실·파손에 대비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파일의 사본을 보존하는 것으로, 원래 정부·관공서·기타 조직체의 공문서와 사문서를 소장·보관하는 문서관 또는 기록 보존소를 의미하는 보존 문서관에서 유래됐다. '진본'의 가치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는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불가능성이다. 6.25 전쟁은 남·북한 지역에 한정됐지만 참전한 국가의 수 16개국, 자원송환원칙에 따른 중립국 4개국, 전쟁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 국가 2개국 등 총 22개국이 관련돼 있다. 특히 세계냉전의 확대 및 심화로 이어지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자원송환원칙의 기록물은 1950~1953년까지 계속된 전쟁의 평화와 인권 신장을 반영한다. 자원송환원칙은 남·북한에서 벌어진 영토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여러 대륙과 국가에서 생산됐으며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6.25 전쟁기 전쟁포로들은 제네바 제3협약의 원칙에서 보호됐지만 송환될 국가를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원칙에서 재분류된 포로들은 새로운 수용소에 수용됐다.

초기 포로수용소는 송환여부와 상관없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송환여부에 따라 수용소는 2곳에서 16개소로 늘었다. 수용소의 수용동은 500명 규모와 각종 부속 건물 등으로 구성될 수 있었다.

자원송환원칙에서 1952년 4월 포로에서 재분류된 민간인억류자들이 석방됐다. 1953년 6월18일 7개 비송환 포로수용소에서 대규모 포로들이 탈출을 시도하면서 포로 송환 자체를 위협했다. 쌍방의 국가들은 포로 송환 관련 선전·선동과 수용소 내 극단적 폭력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러나 자원송환원칙에 따른 포로교환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특히 86명의 포로들은 남·북한이나 중국과 대만에 송환되지 않고 중립국을 선택하는 사례가 나왔다.

6.25 전쟁은 전 세계 냉전의 심화와 첨예한 대립을 낳았다. 하지만 포로 송환에서 자원송환원칙은 6.25 전쟁 전후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여러 세계전쟁에서 포로 자신의 선택을 넓히는데 지대한 영향을 줬다.

거제시, 국내기관뿐 아니라 국외기관과 등재 협력을 맺다

거제시는 지난 2017년부터 국내·외 자료 수집을 위해 본격 활동에 나섰다. 6.25 전쟁에 대한 기록물은 거제시 말고도 국내에서는 국가기록원·육군기록정보관리단·전쟁기념관·독립기념관, 국외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영국 공문서관 및 제국전쟁박물관, 유엔기록보존부, 프랑스 국립기록원, 네덜란드 국립기록원 등에도 수백 건의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록물 수집 및 연구 해제를 진행하던 거제시는 2017년 10월께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는 거제시 단독이 아닌, 국내 6.25 기록물을 간직하고 있는 기관과 함께 공동 등재하기로 약속을 이뤘다. 이후 2018년부터는 국외 자료 수집을 본격화한다. 그 결과 국내·외 기관에서 7만8098장의 사진과 문서 등을 수집하게 된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 현 주소

본격화한 2017년부터 순조롭게 진행됐던 세계기록유산 등재 움직임은 '위안부' 기록물 등재와 관련한 일본의 반발로 정체됐다.

2018년 기록유산위원회에 제출된 '위안부 기록물 등재'와 관련해 일본이 의견충돌 당사자와의 협의할 것을 요구하는 내부 규정 신설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4월과 11월 두 차례 협의를 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기록유산위원회가 내부 규정을 마련하기 전까지 신규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지난해부터 등재를 준비해온 '거제도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 움직임은 잠시 멈춘 상태다.

이로 인해 국외 공동 등재를 준비하고 있던 기관 중에서는 유엔과 영국 제국전쟁박물관을 제외한 다른 기관은 기록유산위원회의 규정 확정에 따라 재논의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내부 규정이 마련되기 전까지 성급하게 진행하지 않기 위함이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준비해온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홍보 웹사이트와 기록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갑생 사회발전연구원은 "기록유산위원회 내부 규정 확정 일정 점검과 동시에 현재 디지털 작업이 돼 있지 않은 각종 기록물을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진본이 훼손되더라도 복원이 가능할 수 있고, 기록물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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