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민귀식 밀양교회 목사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는 여성과 어린아이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힘이 약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존중해줬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어린아이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귀하게 여기거나 무가치하게 여기면서 버린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 경우 자식을 시장에서 노예로 파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힐라리온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만일 당신이 낳은 아이가 사내아이면 기르고 계집아이면 버리도록 하시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속에서는 여자와 어린이는 사람의 수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14:21에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잘못된 사상속에서 멸시·천대받던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존귀하게 여기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18:16에 보면 예수님께 다가오는 아이들의 앞을 막았던 제자들을 향해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속에서 '이런 자의 것'의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어린 아이의 신뢰성과 함께 의존하는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자신을 양육해 주는 부모님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합습니다. 가식적으로나 이중적으로 부분적으로 형식적으로 신뢰하거나 의존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신뢰하고 전폭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이의 마음과 모습입니다. 바로 천국은 우리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면서 의존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어린아이의 겸손한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유약하고 부족하다는 사실, 더 크게 더 강하게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면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거나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같은 모습은 어린아이의 아름다움이며 숭고한 장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잠언18:12)라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벧전5: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겸손으로 우리 허리를 동이게 될 때 우리 인생은 보다 더 빛날 수 있으며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어린아이의 지적 탐구심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보다 더 나은 진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가 서 있는 여기에 자족하면서 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도전하고 응전하는 경향이 어린아이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알기 위해 끝임없이 질문하고 노력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여인들보다 어린 아이들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바로 '지적 호기심'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당시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호기심', '영생과 하늘나라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이 호기심을 온전히 충족시키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공부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게 될 때 그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불신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사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교만하고 거만한 삶이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요, 진리와 영생, 하늘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는 삶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천국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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