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자금이 부족하자 도성을 드나들기 위해 사대문을 이용하는 행인들에게 '도성문 통행세'라는 이름으로 돈을 거뒀다. 유료 통행료의 시초다. 껄렁껄렁한 깡패 같은 놈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가 만만한 애가 지나가면 앞을 막아서서 여기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야 한다고 협박해 돈을 뜯는 일이 현대판이라면, 고전판은 산을 넘는 나그네에게 우루루 떼거리로 몰려가 통행세를 내라고 어거지를 부리던 옛날 산적들이다.

이 대명천지에 자기 땅을 지나간다고 해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내라고 산적 같은 짓을 하는 곳이 있었다. 명목은 자기 절이 문화재관리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길은 지리산을 관통해 구례에서 남원으로 가는 861번 지방도로이며, 더구나 문화재 관람도 하지 않는데도 단지 절 경내라는 이유로 1인당 1600원씩 내야만 했다. 통행료의 부당성에 대해 2000년과 2013년 사회단체에서 두 번이나 소송을 해 승소했지만, 소송 당사자에게만 요금 반납을 했을 뿐 꿈쩍도 않았다.

'산적도로'라고 불리던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이야기다. 천은사는 본래 물이 좋은 샘이 있어 감로사(甘露寺)라고 불렀다. 감로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육욕천(六慾天)의 둘째 하늘인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물이다.  이 물을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는 신비의 물이다. 숙종 때 절을 수리하면서 이 샘을 지키는 구렁이를 죽였다. 그러자 그 후로 샘은 말라버렸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자주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조선 4대 명필 중의 한 분이셨던 원교 이광사(李匡師·1705~1777)를 찾아가, 일주문 편액에 달 글씨를 써주되 물을 담뿍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원교는 물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로 쓴 '智異山 泉隱寺(지리산 천은사)'라는 편액을 걸고 난 뒤부터 화재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가만히 보면 글씨 속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32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은사 통행료가, 지난달 29일 드디어 폐지됐다. 늦게나마 통행료 폐지는 참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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