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복 (oil on canvas / 116.8㎝×80.3㎝)

꽃잎이 눈처럼 하얗게 날리는 봄날은 그 아스라한 추억과 함께 다음 한 해를 기약하며 떠났다. 하얗고 푸르스름하다 핑크스러움으로 마감한 그 여린 꽃들의 기억은 아쉬움과 그리움 같은 서러운 여운으로 남아있다.

이제 곧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약간의 끈적함이 있는 계절, 1년의 중간지점인 초여름으로 시간이 향하고 있다. 이 계절에 나는 보고 싶은 색들과 그것들이 펼쳐진 들과 산 그리고 물을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깊어진다.

몇 년 전에도 불현 듯 빨간 연꽃이 보고 싶어 어느 유명한 연꽃지를 찾아 간적이 있었다.

8월 중순을 넘어선 시기라 꽃이 한창이던 때가 지났기에  고개를 들고 있는 꽃들보다는 수면아래  누워있는 기다란 꽃대만 보여 아쉬움이 컸다. 대신에 산책이나 하는 마음으로 연꽃밭 사이에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다가 물속에 잠겨 갈색으로 변한 기다란 연꽃가지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유달리도 색이 선명해 시든 연잎들과도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새삼 눈에 확 들어 왔다.

시들어 가는 연잎한쪽은 점점 줄어드는 강렬한 올리브 그린의 느낌이 오히려 강렬했다. 생명의 뒷모습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해서 한참을 그 모습을 들여다봤고 삶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아련해졌다.

빨간 연꽃의 전성기를 보러 갔다가 오히려 그들의 쇠잔한 모습에 새삼 삶의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던 그날, 묵직한 느낌으로 작업했던 그림이 이 작품 '사색'이다.

빈센트 반고흐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방의 밤하늘에 보석같이 빛나는 별을 보고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태양의 빛이 축복처럼 빛나고 들판의 고요가 아름다운 그 한낮의 모습보다는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빛나는 별들에게 사랑을 주었던 고흐의 감성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에 비길 바는 못되지만 그가 보았던 자연의 또다른 이면에 대한 사색과 그리고 그것이 주는 즐거움이 있음에는 나도 동의하며 세월을 넘어선 동질감을 느껴본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