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
김은경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

들어 선 거실이 어둡다. TV를 보고 있던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거실이 환 한 게 좋아! 근데 당신은 불을 안켜고 TV를 보더라. 나는 당신이 내 말을 안들어서 짜증나!"
"왜 그래? 나 혼자서 TV 보는데 굳이 불 켜야 하는 이유가 있어?"
"나는 집안이 환한 게 좋다고 했잖아. 밖에서 들어 올 때 집이 환한 게 좋단 말이야."
"혼자 있는데 전기요금 폭탄 맞을 일 있어?  알뜰 주부는 다른데서 찾아!"

밖에서 들어와서 한다는 소리가 쌩뚱맞다는 표정으로 남편은 나를 쳐다봤다. 남편 말이 맞는 것 같은데도 마음속에서는 화가 나는 이유를 찾지도 못한 채 입다물고 저녁시간을 보냈다.

밤늦은 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모임 때 마다 일처리가 야무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녀였다. 요즘 건강검진에서 경고 신호를 받은 나로서는 밤 약속을 하기는 싫었지만 전화 속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거절 할 수 없어 동동주와 파전이 당기는 약속 장소로 가게 됐다.

밤늦은 시간에도 칸막이가 되어 있는 실내에는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4명이 모였다. 모임은 중학교 3학년인 딸의 봉사활동 동아리에서 알게 된 엄마들이다. 늘 상 만날 때 마다 할 얘기가 많지만 오늘도 얘기가 한 보따리 풀어졌다.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요즘 거제 아파트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됐다. 거제를 힘들게 만든 요인들을 꼽으며 욕이 절로 나왔다. 욕 소리에 깔깔 거리며 모두 웃는데 별안간 한 동생이 엉엉 운다.

"언니 이제 그 얘긴 그만해요!"
"왜? 무슨 일이야?"
"언니 요즘 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은 부자고 여러 채 가진 사람은 '하우스 푸어'라고 하잖아요. 미치겠어요! 세입자들은 나간다는데 아파트 전세 값은 반토막이고 남편 월급은 예전 같지 않아 대출받아서 전세금 마련할 생각을 하니 미치겠어요. 언니 요즘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어디 그 얘기가 너한테만 속하겠니?"
"아마도 말은 안하지만 속앓이 하는 사람 많을 거야."

그동안 아이 셋 키우면서 재테크를 잘해서 남편이 살림 잘한다고 믿어주는 게 고마워서 더 재테크를 했고 부동산 아파트에 올인을 했단다. 전세 받은 돈으로 다시 아파트 사서 전세 놓고 그 돈 다시 전세 놓고, 결국 모래성같이 그동안 모았다고 생각한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울면서 하소연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무슨 말로도 위로 될 수 없었다. 안타까워서 내가 돈이 많다면 그녀에게 그냥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남들이 들으면 노후 준비가 다 되어서 그런가 하고 오해할 수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주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결국 욕심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법정스님이 무소유에 대해 읽고 나서였다. 깊은 산골에서 수양하시던 법정스님에게 지인이 난(蘭) 화분을 선물하셨는데 금지옥엽 자식같이 물주고 비료주고 지극정성을 다하여 난(蘭)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 어느 날 법정스님이 출타를 하던 중 난을 햇볕 쬐는 마당에 내놓고 나온 게 생각이 나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난(蘭)걱정만 하였단다.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시고 암자로 오신 스님이 난을 보면서 "난(蘭)아! 난(蘭)아!" "내가 너를 가진 줄 알았더니 너가 나를 가졌구나"하시곤 난에 대한 마음을 접으셨단다. 그리고 나온 것이 무소유라고 한다.

가졌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금고에 황금이 가득해도 채울 수 없는 게 인간의 욕심이다. 아동복지시설에 봉사활동 가서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가 건강한 몸을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도 돌아서면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늦은 시간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중단 되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 당장의 불행은 불행이 아닐 수 있다. 인생 멀게 내 다 본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불 끄고 TV 보는 남편을 생각하며 뚜벅뚜벅 집으로 걸어갔다. 밤공기가 계절 같지 않게 차갑다. 이번 겨울, 잘 넘기길 기도해 본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