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당 스님/세진암 주지

“성내지 않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 한 향이로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을 잘 알면서도 이를 실생활에 그대로 옮겨 실천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어느 동물보다 감정의 노출이 강한 감각의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하루라도 이 감정을 죽이면서 살 수 없는 일이고 이 감정의 노출이 필연이므로 성질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일년 열두달 성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성질을 표출시키는 언어(말)도 그 성질의 변화만큼 다양하므로 일년 열두달 부드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부처님께서 “성을 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성내지 않는 얼굴을 참다운 공양구로 부드러운 말을 참다운 향에 비유하신 것이다.

공양구란 우리가 부처님께 겸허한 자세로 올리는 기구이다. 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참다운 공양구란 곧 부처님께만 올리는 기구가 아닌 것이다. 향도 그렇다.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중생을 내 부모처럼 자식처럼 위해주는 공양구이다.

따라서 우리의 감정을 늘 표출시켜 주는 얼굴이 기구라면 성내지 않는 얼굴이 곧 진실로 참다운 공양구이며 말을 부드럽게 씀으로써 역시 내 부모, 친지, 이웃으로 하여금 마치 좋은 향을 맡은 듯 심신이 즐거워진다면 이 또한 미묘한 향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이웃의 사람들 중에 성질을 내며 욕설을 밥 먹듯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전부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성품이 과하거나 배우지(수양) 못한 사람들이다. 성질이 과하니 성을 내게되고 수양이 부족하니 이 또한 성질이 사납다.

이들의 얼굴을 보면 역시 십중팔구 그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얼굴이 그 사람’이란 평범한 말을 실감난다.

사람중에는 얼굴과 다른 사람이 있기는 하다. 늘 성을 내는 듯하지만 속마음은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지극히 극소수로 성내고 난폭한 말을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음력설도 지났다. 얼마 안있으면 봄이다.
이를 계기로 이제부터는 부처님 말씀처럼 성내지 않는 얼굴, 부드러운 말을 쓰는 생활에 대한 다짐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서로 양보하고 참고 이웃을 돕는 생활을 일상화 해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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