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프다
바다가 아프다
  • 김철수 칼럼위원
  • 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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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바다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어머니다. 그런 바다가 폭염에 몸살을 앓고, 오염돼 병들어 아프다. 바다를 아프게 한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어떻게 바다를 치유할 것인가.

생명의 보고인 바다는 생명을 이어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 걸쳐 생존을 가늠하는 식량의 공급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해·남해·서해란 세 곳의 풍성한 생명의 보고를 가지고 있다. 이 보고에는 식량자원이 쉬지 않고 생성되고 보존돼 있다. 해안가와 갯벌에 패류와 고동·갑각류·두족류 등의 바다생물이 자란다. 어디 그뿐인가. 조개류·전복·굴·멍게·성게 등의 수많은 종류의 어족들이 살고 있다.

이런 생명의 보고가 몸살을 앓았다. 지난 여름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이 며칠씩 연이어 졌다. 수온이 상승해 바다가 아팠다. 지구 온난화는 왜 생기는 것일까.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 빚은 결과가 아닌가. 온실가스배출이 원인이라고 한다. 화석연료의 과다사용과 쓰레기 부패, 유기물의 분해, 폐기물 소각 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폭염이 남긴 바다의 아픔은 처참했다.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하는 청정해역 거제 바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맑고 깨끗한 이곳에 목불인견의 광경이 펼쳐졌다. 해상가두리 안에서 배를 허옇게 드러낸 물고기들의 떼죽음은 전율이었다. 아가미를 벌린 채 죽어있는 물고기가 부유하는 참혹한 광경은 안타까웠다. 바다에 죽어 널브러져 있는 물고기의 잔영이 떠올라 한동안 식욕이 없었다.

환경오염으로 바다가 병들어 아프다. 생활에서 발생한 오수, 산업현장에서 생겨난 폐수를 바다로 흘러 보낸다. 가축분뇨 등의 유기물질의 유입도 바다가 아픈 원인이다. 환경오염은 환경파괴로 이어져 생명의 보금자리인 바다가 병이 들어 아프다. 병들어 아픈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인들 온전하랴.

바다오염으로 적조현상이 발생한다. 적조현상은 어패류를 폐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의 오염이라는 2차적인 피해도 가져온다. 적조현상으로 아픈 바다를 본적이 있는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바다는 끔직하다. 적조현상을 완화시켜 보려고 바다에 황토를 살포하지만 가당키나 한가. 역부족임을 실감한다. 사후약방문격이 아니랴.

플라스틱 공해가 바다를 아프게 한다. 연안 곳곳에는 하얀 부이(buoy)가 수를 놓은 것같이 바다를 점유하고 있다. 우선 보기에는 가지런하게 파도 따라 반짝이는 모양은 목화밭을 연상하게 한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바뀐 양식업이 연안어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역·다시마·김 등의 해초류와 홍합·멍게·굴 등 패류가 부이에 의존해 산다. 우럭·넙치·도다리·도미·방어 등의 수많은 어류가 가두리 양식장에 살고 있다.

'꿈의 재질'이라던 플라스틱이 공해의 주범으로 변했다. 플라스틱 제품인 스치로폼의 부이가 양식장의 종패나 어망을 달아 지지하고 있다. 이 부이는 가벼운 재질에 뜰 수 있는 부력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용한 이들도 바다오염의 주범 중 하나임에랴. 놀라울 따름이다. 청정해역인 거제바다, 이곳도 스치로폼 부이의 잔해로 오염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라고 했던가. 쇠나 목재를 대체해 튼튼하고 녹쓸지 않고 썩지 않는 꿈의 재질이 플라스틱이다. 편리한 생수병·일회용그릇·비닐봉투 등 생활기물의 대부분이 플라스틱 제품이다. 이런 제품을 쓰고 아무데나 마구버리니 문제다. 오죽하면 '플라스틱 공해'란 말까지 생겼을까.

플라스틱쓰레기 가운데 지름이나 길이가 5㎜이하인 작은 플라스틱 입자인 '미세 플라스틱'이 문제다. 바다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하여 '바다의 미세먼지'라고 불린다. 이런 '바다의 미세먼지'가 바다의 자정기능을 마비시킬 뿐더러 바다생물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바다에 이른 미세 플라스틱은 바닷물 속에서 '플라스틱 스모그' 현상을 일으킨다. 해양생물이 먹이로 오인하게 된다. 매년 십만 마리의 해양 포유동물와 백만 마리의 바닷새가 플라스틱 때문에 죽어간다고 한다. 생명의 보고가 플라스틱 공해로 인해 '생명의 무덤'으로 변해가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뿐이 아니다. 플랑크톤이나 어류 등 먹이사슬의 모든 단계에 있는 생물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먹는다. 축적된 미세 플라스틱이 먹이 사슬을 타고 상위 단계로 이동해 인간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바다는 내면에 보듬고 있는 푸른색의 침잠으로 풍성하다. 푸름은 미래를 낙관하는 희망과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바다가 병들어 아픈 것은 절망이다. 바다는 지구상의 인류와 생명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버팀목인 동시에 생명의 보고이다. 바다가 아파서 절규하는 것은 생명의 보고가 파괴되어간다는 신호다. 이런데도 바다에다 오수와 폐수, 생명체의 죽음을 불러오는 '플라스틱 공해'를 마구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로 인해 생명의 보고인 바다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연안과 갯벌, 근해와 심해를 망라해 생명의 보고가 앓고 있는 것이다. 오·폐수와 적조, '플라스틱 공해'로 인해 병이 들어 아파서 신음하는 바다, 생명의 보고를 그저 망연히 바라만 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아픈바다를 치유할 수 있을까. 후손들에게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보고, 언제나 푸름을 자랑하는 바다를 물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무분별함과 욕심이 생명의 보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아프게 한다. 아픈바다를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을까.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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