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거제지역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완)]
거제시, 독립유공자 후손 명패 달아드리기 나서

3.1운동 100주년과 8.15광복 74주년을 맞았건만 아직까지 선열들의 피맺힌 항거 사실을 후손들이 전부 알기는 역부족이다. 부족한 정성과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이라 자책하며 거제신문은 지역에서 일본의 총칼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를 재조명해 그분들의 얼을 기린다. 거제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기획시리즈로 거제지역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찾아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직접 듣고 자료를 수집해 연재하면서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나라사랑과 그분들의 의기를 널리 알린다. 유공자 후손들에게도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편집자 주


거제에 본적을 두고 있는 유공자 42명의 명단이 확보됐다. 이들은 국내·외를 오가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옥고를 치렀던 분들이다.

거제4.3운동 당시 아주장터에서 군중 약 25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독립유공자이고 우리가 외부의 억압을 받지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분들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거제에 본적을 두고 있는 유공자는 현재 42명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거제시에 거주 중인 후손은 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거제시는 지난 4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애국지사 진병효의 자녀 진형봉 씨의 집에 '독립유공자 명패'를 부작했다. 사진 왼쪽부터 진병효 애국지사의 아들 진형봉씨와 변광용 거제시장, 안주생 경남동부보훈지청장이 명패 부착식에 함께 했다.
거제에 본적을 두고 있는 유공자는 현재 42명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거제시에 거주 중인 후손은 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거제시는 지난 4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애국지사 진병효의 자녀 진형봉 씨의 집에 '독립유공자 명패'를 부작했다. 사진 왼쪽부터 진병효 애국지사의 아들 진형봉씨와 변광용 거제시장, 안주생 경남동부보훈지청장이 명패 부착식에 함께 했다.

거제 4.3운동과 4.6운동

경상남도에서 1919년 3월8일부터 5월2일까지 21개 부·군에서 조선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이 133건에 달했다고 한다.

거제와 통영은 1919년 3월13일 하급관공리(면서기·군청 고원·산림기수)와 통영대화정교회(지금의 충무교회) 신도 등이 주도했으나 사전에 발각됐다. 같은 해 3월28일에는 포목상·해물상·제봉업자 등의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참여했으며 4월2일 학생·어민·하청 노동자·예기조합 기생 등 전 계층으로 확대됐다.

1919년 4월1일 이운면 아주리에 거주하는 윤택근은 이운청년회 집행위원·청산위원 등을 맡아온 이주근에게 조선독립 시위운동을 제안한다. 이주근은 윤택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다음날 저녁 윤택근·이주근·이인수·이공수 등은 아양리 서당에 모여 10여장의 큰 종이에 '대한제국 독립만세'라 쓰고 아주리로 집결해 4.3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협의했다. 협의가 끝난 후 이인수는 이중수와 함께 '대한제국 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종이를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붙이고 시장도로에 뿌렸다.

4월3일 오후 7시경 윤택근은 이주근, 이인수 등과 함께 아주장터에서 군중들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키 시작했다. 이날 체포된 인원은 10명(윤사인·이인수·이주근·윤택근·김민호·최호문·이태수·이중수·김봉술·정상일)으로 아주리 3명, 아양리 5명, 사등과 동부면 각1명으로 나이는 10대에서 30대까지 대부분 젊은이들이 주도했다.

4.3운동 이후 옥포에서 또 한 차례의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1919년 4월5일 주종찬은 옥포리에 있는 옥찬영의 방에서 크고 작은 종이에 '대한제국 독립만세'라 쓰여진 깃발을 만들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이운면 옥포리 망덕봉 앞에서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옥포를 출발해 10리 거리에 있는 아주시장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을 했다.

주종찬은 큰 깃발을 손에 들고 서당 학동들은 작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날 오후1시경부터 참가자들은 옥포리에서 아주장터를 거쳐 이운면사무소 앞까지 진출한 뒤 오후 4시경에 해산했다. 이들은 이운면사무소에 들어가 시설을 점거하고 그 과정에서 주종찬을 비롯한 13명(주종찬·진홍기·진정률·김기두·반성률·김사룡·옥찬영·주규찬·강판진·도병두·이화병·김영환·김선주)이 체포됐다.

이날 운동으로 주종찬은 징역1년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인원들은 기소유예 및 중지로 출감했다.

명패 부착 후 행사 관계자들이 진형봉씨의 집에서 진병효 애국지사의 활동내용을 듣고 자료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명패 부착 후 행사 관계자들이 진형봉씨의 집에서 진병효 애국지사의 활동내용을 듣고 자료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거제에 거주 중인 애국지사의 후손들

지금까지 확인된 거제에 거주중인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5명으로 알려졌다. 애국지사 옥영준·진병효·황상봉·유진태·진택현의 후손들로 대부분 고령의 나이였지만 오래전 일들을 기억하기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선대의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하고 있다.

만주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옥영준 애국지사는 1982년 2월17일 생으로 1919년 대한독립단에 입단해 단원들과 평북 용천군에서 군자금·단원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 1921년 2월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종교의 탄압이 심했던 일제 강점기시대에 목회자로 활동했던 진병효 애국지사는 1941년10월 경남 통영군 장승포읍 옥포리(현 거제시 옥포동) 예배당에서 일본의 황국신민화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창가를 예배당 벽에 붙였다가 체포돼 징역 4월을 선고받았다.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만주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황상봉 애국지사는 1919년 12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 구수하에서 간도국민회에 가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1920년 6월 함북 성진군에서 국민부의 문서 배포 등을 위한 통신기관 설치를 협의하다 체포돼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골동품 판매상으로 가장해 만주지역의 독립단체들에게 자금을 전달했던 유진태 애국지사는 1919년 3월14일 충남 공주군 신상면 유구시장에서 황병주가 주도하는 만세운동에 참여해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황병주가 체포되자 이승현의 주도하에 100여명의 군중과 함께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 돼 징역 6월에 벌금30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30원은 지금의 3000만원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진택현 애국지사는 1919년 3월 경남 합천군 삼가면 읍내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동군 상백면사무소에 기물을 파손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됐다.

거제, 독립유공자 명패 수여

거제시는 지난 4일 거제에 거주하고 있는 애국지사 진병효의 자녀 진형봉씨 집을 방문하고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변광용 거제시장과 안주생 경남동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한 관련공무원 1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명패전달식과 명패달기·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으며 이후 다과와 함께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변광용 시장은 "시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유공자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관련 조례제정을 통해 예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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