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오늘 회식이야, 횟집에서 하는 건 어때?"

퇴근 30분을 남기고 직장 상사가 호쾌하게 부르짖습니다. 이 말 들으면 어떤가요? 맛난 음식이 상상되기도 하겠지만, 동료들과 즐거운 저녁 시간이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뭔가 걱정되시죠? 벌써부터 속이 아프시나요? 퇴근하면 가고 싶었던 나만의 멋진 공간, 상대방의 마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사람과 음악, 바람과 분위기가 싹 사라지는 퇴근 30분 전. 회식! 당신은 어쩌시겠습니까?

'먹노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일터 안에서만 노동이 아니라 퇴근 후에도 상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자리를 지켜야 하며 직위에 맞는 행동을 하고 술을 마셔야 되니 먹는 것도 노동이란 이야기지요. 회식도 일의 연장이란 말 공감하시나요? 이건 관리자의 입장이겠지요. 회식은 같은 소속이나 단체의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인데 일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팀의 결속력을 다지고 직원들의 노고에 답하는 회식의 뜻이야 백 번 이해하지요.

회사 내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시를 받고 잔소리를 듣는 상사의 우월적 지위를 회식 자리에까지 연장해서 확인하는 자리라면 정말 괴롭지요. 상사의 우월적 지위를 계속 듣게 된다는 점에서는 업무의 연속이 맞네요. 하지만, 팀의 결속력 어쩌고 하는 것은 관리자들이 바라보는 회식의 다른 뜻이겠지요.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상사인데 쉽게 권위를 버리고 회식에 참가할 수는 없겠지요. 대한민국이 한창 발전을 이룰 시기에 가정보다는 오직 회사와 일에만 매달려 고생하신 상사분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있습니다. 상명하복의 군대문화에 익숙하고 일과 회사를 위해서는 개인쯤이야 얼마든지 희생할 줄 아는 조직에 대한 한국적 충성심, 장유유서의 미덕을 실천해 오신 분들이라 그 노고에 존경심은 당연하지요.

다행스럽게 회식에 대한 사회적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회식 분위기가 권위적 분위기라면 어쩌지요? 예고 없이 다가오는 건배사에 대한 부담은? 팀원들의 반응이 신통찮은 재미없는 건배사를 하고 난 뒤 회식 분위기를 망쳤다는 불안감, 회의감 다들 경험 있으시죠?

잔을 채워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고 건배사가 이어지고 박수를 치고 난 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 술자리에서 부르짖은 건배사처럼만 바람들이 이루어졌다면 일등 가는 팀과 회사,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국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회식 분위기에 편승한 그 희망찬 건배사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만수무강해야 할 부장님들은 무탈하실까요? 우리 팀의 실적은 또 어쩌고요?

회식은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만 할 줄 알았던 무뚝뚝한 선배들의 편안한 농담에 긴장감을 떨쳐버려도 되고, 평소 불만이었던 서로의 습관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됐으니 정말 팀윅에 도움이 됐네요.

이렇게 합시다. 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세요. 배려, 별 거 있습니까? 술이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음료수나 물을 마실 기회를 주고, 회식보다 더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마음 편하게 양보해주고, 상사가 회사를 위해 헌신한 추억을 되새기며 장유유서를 강요하는 권위보다는 어렵게 입사한 젊은 사람들의 가치와 포부를 이야기 할 기회를 더 주는 것, 회식 다음 날 숙취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팀원들을 위해 회식의 시간을 정해 놓는 일, 그래서 개인생활과 일의 균형이 잘 맞춰진 멋진 조직을 만들어주는 이런 게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만.

즐거운 회식은 힘이 됩니다. 부담되지 않는 회식은 '먹노동'이 아닙니다. 음식은 즐겁게 먹어야 영양분이 섭취되고 신체가 건강해집니다. 먹는 것이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수고한 직장의 내 팀원들에게 그래 수고했어, 솔직하게 노동의 대가를 인정해 주세요. 큰 위로가 됩니다. 굳건하게 우리 회사를, 우리나라를 지켜 온 당신의 노고에 이미 충분히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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