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생활에 가장 알맞은 입지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지형이나 기후는 물론이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좋은 자연조건, 그리고 교통도 편리해야 하고, 다른 부족들이 침입했을 때 방어하기도 좋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은 찾기 어렵다. 따라서 다른 조건은 다 포기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면 물이다. 그래서 인간이 모여 살았던 곳은 강변 또는 바닷가 같은 물가였다. 오늘날 '마을'의 어원은 '물   '에서 온 말이다.

그럼 '부락'이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인가? 원래 부락(部落)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던 말로 혈연으로 이루어진 씨족집단을 말한다. 우리 사전에서도 정의하기를 '시골에서 여러 민가(民家)가 모여 이룬 마을'이라고 풀이한다. 마을의 한자어로 부락을 생각할 만큼 순수했던 말을 일본이 더럽혀 놓았다.

사무라이 시대 최고 신분이 무사였고, 그 밑에 농민, 그 아래로 천민집단인 부라쿠(部落)민이 있었다. 백정 같은 천민, 전염병 보균자, 전쟁포로 등의 집단거주지가 부락인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시대까지 존재하다 조선시대에 혁파된 향, 소, 부곡을 생각하면 된다. '부라쿠'라는 단어는 일본인들조차 모욕으로 느낀다. 실제로 일본작가가 소설에서 '부락'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아 이미 전국 서점에 풀린 책을 모조리 회수하거나, 심지어 판매가 금지되는 일도 있었다.

일본인조차도 모욕으로 느끼는 이 용어를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부락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것이 관청용어처럼 굳어졌다. 이후로 '부락'이 '마을''동네'라는 좋은 우리말을 제쳐놓고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못된 의도를 안다면 절대로 다시 쓸 말이 아니다.

더러는 부락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나쁜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쓰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에겐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한번 더럽혀진 말을, 그것도 일본이 우리의 자존심을 밟아 놓은 말을 써야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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