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철 거제아동병원 원장
강두철 거제아동병원 원장

얼마전 일간지에 '최근 3년간 스위스서 한국인 2명 '원정 안락사' 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조력자살) 기관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락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스위스는 2006년 연방대법원이 안락사를 최종적으로 인정했으며 외국인에게도 허용되고 있다.

약 20년 전 우리나라에서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 했다. 1997년 12월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의학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강한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후 사망한 사건으로 2004년 6월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 판결을 했으며 이후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많은 환자들이 호흡기를 단 채로 중환자실에서 사망하게 됐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란 무엇일까? 안락사(Euthanasia)는 수월한 죽음,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행복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며, 안락사 외에도 존엄사·연명치료 중단·의사 조력자살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안락사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로 적극적 안락사는 불치의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의 생명을 독극물 주입 등으로 단절시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조력자살이라고도 불리우며 우리나라에서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된다.

두번째는 간접적 안락사로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처치한 결과 그 부작용 때문에 사망한 경우다. 이 경우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 또는 살인방조죄에 해당된다.

세번째는 소극적 안락사이며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거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환자를 사망케 하는 것으로, 이러한 소극적 안락사가 넓은 의미의 존엄사에 해당이 된다.

그러나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는 구별이 필요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2007년 7개월동안 사망한 암환자 213명중 85%가 연명치료 거부 서약을 했으나 그중 환자 자신이 서약을 한 경우는 없었고 모두 가족이 서약을 했다. 심지어 서약환자의 80%는 의식이 분명했는데도 본인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라매병원의 말기암환자 165명에 대한 조사에서도 87%가 연명치료거부에 서약했지만 본인이 한 경우는 단 1명뿐이었다. 환자에게 죽음의 방식에 대해 묻는 것은 우리의 정서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임종환자의 간병은 가족에게 큰 부담을 주며 한 사람의 죽음이 평균 5명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2018년 국내에서 30만명이 사망한 사실을 고려하면 국민 150만명이 죽음과 관련해 고통받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매년 3만여명의 가족이 환자 간병의 부담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있으며 3만여 가구가 저축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1만여가구가 더 싼집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통계가 있다.

또한 안락사나 존엄사 논란의 가장 흔한 이유중 하나가 통증인데 말기암 환자의 경우 암자체로 인한 통증이 65%, 암치료로 인한 통증이 25%, 암과 무관한 통증이 10% 정도이며 통증의 95%는 강력한 진통제로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중독문제·법적제재 등으로 많은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76년 처음으로 자연사법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먼저 생전유언이 법제화 됐으며, 미국의사협회는 1999년 총회에서 적극적 안락사(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반대성명을 발표한 후 진통치료촉진법을 통과시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약성진통제 처방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일본은 안락사에 대해 법제화 돼 있지 않으나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있으며, 안락사와 관련된 판결문에서 안락사의 요건 4가지 즉,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 죽음에 임박한 상황,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방법이 없을 때, 생명단축을 승낙하는 환자의 의사명시 등이 있다고 하면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

로마교황청은 안락사를 살인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나 의료시행에 있어 정당한 부분에서 존엄사(연명의료 중단)를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대만은 2000년 5월 자연사법을 통과시켰으며, 우리나라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법'이 시행 중이다.

대국민 의식조사에서 보면 '의도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마치게 하는 행위' 인 적극적인 안락사와 구분해 80% 이상에서 '무의미한 치료라면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아 어느정도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존엄은 인간답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즉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존엄사를 위한 법적 및 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 성원 모두가 품위있는 임종(well-dying)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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