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3월의 서문마을
1951년 3월의 서문마을
  • 이승철 시민기자
  • 승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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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그해 11월 고현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맨 먼저 고현과 용산 들판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고 성 안에는 포로를 감시하는 경비병 막사를 지었다.

이 사진은 1951년 3월 유엔군 홍보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앞부분 초가집이 많은 곳이 서문마을이다.

당시 고현성 주변에 마을이 있었다. 고현성 서쪽 성문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서문(西門) 마을이라 한다. 포근한 초가집 주변에는 전답이 계단처럼 있고, 초가집 마을 너머로 함석지붕으로 된 막사가 있다.

이곳은 고현성 안쪽으로 포로 경비막사가 줄을 지어 있다. 아래쪽 도로 아래는 포로수용소 막사다. 이곳은 고현성의 동쪽이라 해서 동문(東門)마을이라 한다.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생길 때 맨 먼저 생긴 곳이 고현이다.

포로수용소 경비막사와 보급창고를 지으면서 고현성을 뜯어다 사용했다. 고현성은 고려원종 12년 1271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거창 가조현에 피난 가서 살던 거제도민들이 세종 4년 1422년에 돌아와 수월리에 있으면서 사등성을 축성해 읍성으로 하려고 했으나 성이 협소하고 물이 부족해 1451년 고현성을 축성해 거제현의 치소를 뒀다. 그때부터 임진란이 일어날 때까지 거제의 읍성이 됐다.

임진란으로 고현성이 왜적들에게 함락당하면서 성안에 있었던 거제의 현청이 불타버리고, 폐허 상태로 비어 있었다. 1663년 이동구 현령이 부임해 고현성 안에 있었던 거제현청을 계룡산 너머 거제면으로 옮겨 갔다. 그때부터 고현지역은 폐허로 변해갔고, 옛 현이 있었던 곳이라 해 고현(古縣)이라 했다. 영조 45년 1769년 방리(方里) 개편 때 남문과 서문방으로 분리했다가 1915년 고현리가 됐다.

서문마을은 1950년 전까지는 도론골에 10여호, 건너몰 10여호, 아랫몰 20여호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러던 마을이 주변에 포로수용소가 생기고, 흥남 피난민들이 몰려와서 집집마다 헛간과 마구간에 방을 넣어 살면서 북적였다. 마을사람 유상언이 흥남 피난민들의 숙식처를 많이 제공했고, 휴전협정 이후 포로수용소로 인해 피해를 입은 난민대책위원회 상무로 복구에 많은 일을 했다.

1984년 8월8일 서문2마을이 분리됐고, 1992년에는 서문3·4마을로 분리됐다가 2005년 11월15일 서문5마을이 생길 정도로 도시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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