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13일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에서 촬영한 대장간 모습이다. 대장간은 풀무를 차려 놓고 쇠를 달구어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드는 곳을 말한다.

대장간에서 담금질로 쇠를 달궈 농기구를 비롯해 칼·곡괭이 등 각종 연장을 만드는 장면이다. 흙과 돌로 쇠를 달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그 속에 숯불을 넣어 놓고 풀무질을 해서 쇠를 벌겋게 달군다. 풀무질은 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이 있고, 또 발로 밟아서 불을 붙이는 풀무가 있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에서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쇠로 된 연장을 불에 달궈 만들었다.

조선 시대 대장장이의 신분은 천민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관청의 사역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대장장이라는 천대를 면하지는 못했다.

대장간에서 철·구리·주석 등 금속을 달구고 두드려 연장과 기구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은 기술자들이다. 그 당시는 대단한 기술자인데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쇠를 불에 달궈 망치질을 해 각종 연장을 만든다. 호미나 칼·낫 같은 것 하나 만드는 시간은 줄잡아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럴 때 쇠로 만든 농기구나 주방용 기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대장간의 문화가 발달해 제철소가 됐다. 제철문화가 발달하면서 대장간 문화는 없어졌다. 지금은 대장간과 대장장이를 찾아볼 수 없다. 대장간과 대장장이란 말조차도 없어졌다.

앞으로 미래 첨단 정보화사회가 되더라도 쇠붙이를 다루는 대장장이의 정신과 얼은 제철산업과 철강산업의 원조로 전승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옛 문화를 계승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한편 대장간의 기록상 최초의 야장은 신라의 석탈해(昔脫解)였다. 신라에는 철유전·축야방과 같은 관서가 있어 무기·생활용품·농기구 등을 제작했으므로, 이미 이때 많은 대장장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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