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내가 아는 A씨의 아들이 장가를 간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집 아들이 어떤 처자와 결혼을 할지 무척 궁금했다. 왜냐면 이 아들은 다정다감은 기본이고 예의 바르면서도 이성적이고 게다가 대한민국 처자들이면 다 관심있어 할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울 강남의 대형병원 의사 말이다. 그 아줌마는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이 아들래미 때문에 단 한 번도 속이 상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꿀양육을 했고 어떤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지가 알아서 척척 공부해서 명문대 의대를 갔고 알아서 좋은 병원에 떡하니 취직까지 했으니 아줌마에게는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훌륭한 아들임에는 틀림없다.

몇년 전, 아들이 서른이 넘으면서 내가 아들 장가 안 보내냐고 물으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대답만 했다. 그 당시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지 못한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소개해주고 싶은 참한 처녀들이 하나같이 다 직업이 교사다 보니 교사 며느리 정도로 강남의 의사아들과 상대가 되겠냐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드디어 올 봄에 참한 아가씨를 만나 장가를 간단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 처자와 사돈댁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아줌마 A의 집안과 재력도 대단하고 아들래미도 대단하기 때문에 어떤 며느리를 들였는지 궁금증이 폭발할 정도였다.

궁금하면 오백원 내라는 말에 오백원을 내면서 들은 얘기에 나는 다시 한 번 기절할 뻔했다. 아가씨는 우리 동네 삼성이나 대우같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의 딸이고 미모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성격이 서글서글 좋고 인성이 좋다는 것이 아들이 그 아가씨를 선택한 이유란다. 아줌마 A는 처음에는 살짝 그랬는데 자주 보니 아가씨가 참하고 성실하더란다. 그래서 나머지 것은 안보기로 했고 의사 아들 둔 위세는 결코 안 내기로 했단다.

참 오랫동안 이 아줌마 A를 알아왔지만 나는 이 사람의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마냥 사람을 잘못 보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줌마 A다. 아가씨네 경제를 고려해서 예단도 전혀 안 받고 예단하라고 보내온 돈까지도 그대로 정중하게 사양했단다.

에, 그러면 평소의 우리 아줌마 A로 말할 것 같으면 나랑 살짝 코드가 맞는 부분이 좀 많은데 솔직히 우리는 둘 다 살짝 명품을 좋아하긴 한다. 물론, 내가 훨씬 더더 속물이라 아줌마 A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아름다운 풍경도 좋아하고 꽃과 나무도 좋아하고 밥은 안 먹어도 좋은 커피는 마셔야 하고 색감 좋은 것은 무엇이든 '야!' 하고 탄성을 지른다. 그는 사람 자체가 명품이다. 집안·학벌·재력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도 티 내지 않고 매달 장애인 시설에서 30년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나같이 별 볼일 없는 동네 인간과 별 편견 없이 놀아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위기에 처하면 그 사람의 진가가 나오고 특수한 상황이 닥치면 그의 본성이 나온다. 애지중지 키운 멋진 아들이 장가갈 때 보상심리를 내세워 며느리에게 아들의 위치만큼의 예단을 요구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새 며느리를 배려해주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본기가 잘 다져 있는 아줌마 A를 본다.

사실 나는 아줌마가 워낙에 고급스런 사람이다 보니 며느리도 고급스런 우리 같은 서민은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그런 높은 집 딸을 며느리로 맞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었고 나의 잡스런 인성이라면 분명히 어떤 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성과 성품으로 며느리를 맞는 지혜에 새삼 감탄한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기에 나는 더더욱 믿음이 간다. 나는 앞으로도 아줌마 A에게서 인생에 관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새 봄, 남의 결혼식은 별로 기뻐하지 않지만 푸른 하늘을 향해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꽃 같은 선남선녀의 결혼식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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