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항아리
  • 거제신문
  • 승인 20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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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이삿짐을 실은 차는 떠나고, 허전한 기운만이 남아 있다. 텅 빈 골목길 전봇대 아래 항아리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아침저녁 지나면서 인사하듯 바라본다.

시간 여유가 있는 날에는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본다. 이런 저런 사연을 물어보듯 관찰한다. 비를 맞기도 하고, 스스로 몸을 말리며 쓰러져 누워 있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 집에는 놓을 자리가 없다. 비좁은 집이라 같이 살 수가 없다.

신경 끈을 불끈 묶어본다. 그러면서도 그 항아리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짓궂은 아이들이 차 버리지나 않았을까. 이미 떠난 인연 때문에 가슴 앓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밤이면 작은 새의 울음소리처럼 항아리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두움을 닦아낸 이슬을 밟고 항아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예전에 허리를 다쳤었는지 테를 두르고 있다. 이빨이 모두 빠지고, 듣는 귀는 하나도 없다. 가슴 바닥은 말라서 실핏줄이 쩍쩍 줄금처럼 나 있다.

상처 입은 몸을 만져가며 깨끗이 씻고, 뽀송하게 닦아 물을 가득 담았다. 고달픈 삶을 살다가 버림받은 항아리가 해맑게 웃는 것 같다. 그 물속에 할머니 얼굴이 보인다. 검지 한 마디가 없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립다.

친정집은 살림에 비하면 장독대가 넓고 항아리가 많았다. 사람도 귀하고 살림도 궁하던 친정집은 속이 텅텅 빈 항아리 같았다. 아버지처럼 과묵한 큰 간장 항아리가 장독대 중심에 있고, 좌우로 우람한 항아리들이 여럿 있었다. 된장, 고추장, 젓갈 단지가 차례로 줄을 서 있고, 맨 앞줄에 조그마한 단지들이 올망졸망 앉아 놀고 있었다.

장독 뚜껑 위에 꼼지락꼼지락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보노라면 마루 밑의 강아지도 잠이 들었다. 울타리에 여름 볕을 먹고 키가 큰 해바라기는 커다란 얼굴로 늘 푸른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미소에 눈이 마주친 봉선화도 따라 붉어졌다. 장독대는 유년시절 놀이터도 되어 주었다. 오리나 되는 학교에서 달려와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장독대였다. 할머니께서는 밭일하러 가시면서 항아리에 보물을 숨겨 놓고 가셨다.

차례로 항아리를 열어보고 간식거리를 찾아내었다. 찐 감자, 삶은 달걀, 옥수수, 단감, 홍시 등 무엇이든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전천후 냉장고가 장독이었다.

친구들이랑 숨바꼭질하며 숨을 죽이고 있다가 장독대 뒤에서 잠이 들기도 하였다. 대청마루에서 다리를 내리고 앉아 장독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맞히기 놀이도 하였다. 때로는 억수 같은 비를 맞고 서 있는 항아리의 의연함을 배웠다.

안으로 곰삭히는 깊은 속내가 부러웠다. 할머니께서는 첫새벽 샘물을 이고 와서 기도하시듯 항아리들을 닦으셨다. 질박한 삶이 담긴 항아리들을 자식같이 사랑하셨다. 항아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치마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곡식과 장물 새가 가득 가득 담겼던 지난 시절을 푸념처럼 노래로 흥얼거리기도 하셨다.

시키지도 않은 물을 샘에서 길어오다가 돌부리에 채여서 깨뜨린 적이 있다. 할머니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도랑사구를 깨뜨리고 혼날까봐, 담쟁이처럼 돌담에 붙어 울었다. 할머니께서는 ‘그놈도 오늘이 그 날인갑다.’ 하시면서 손을 잡고 품에 안아주셨다. 그때의 따뜻했던 느낌을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할머니께서는 삼 대 독자 집안에 시집와서 아들만 하나 달랑 낳으셨다. 건장한 아들이 서른세 살 되던 해였다. 할머니 무릎 위에서 그 아들이 갑자기 숨을 거두려 하였다. 한 걸음에 부엌으로 달려가 칼로 손가락을 내리쳤다. 손가락 한마디가 땅에 떨어져 뒹굴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움켜쥐고 아들을 부르며 절규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은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부엌 바닥에 뒹굴던 손가락 한 마디와 함께. 빈 가슴에 슬픔이 깊어진 할머니의 생활은 모두 다 눈물이었다.

평생을 한 색깔로 사는 항아리처럼 명절에도 비단옷을 갈아입지 않으셨다. 뜨거운 피 한 방울 먹이지 못한 모정은 그렇게 한탄의 삶을 사셨다.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장독대를 더욱 사랑하신 할머니, 검은 머리가 희어지고 허리가 굽어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항아리들을 닦으셨다.

전기가 없는 어두운 밤, 등잔 불 아래에서 간혹 할머니의 문드러진 손톱을 깎아 드렸다. 엄지를 지나 검지를 건너뛸 때마다 진한 아픔을 느꼈다. 아픈 할머니의 마음이 소리 없이 건너왔다가 내 속 뜰에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자랐다.

동쪽 창문 아래 항아리와 과반을 꾸며놓고 이만치 벽에 기대어 바라본다. 빈 마음에 돌아가고 싶은 풍경들을 그리며 숨쉬는 항아리와 정담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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