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신문 창간30주년 특별기획] '거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①'
이기우 인천 재능대학교 총장
차기 총선 출마 하마평에 "일 제대로 하려면 그 자리에서 하는 게 효과적"

거제신문은 창간30주년 특별 기획기사로 '거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기획·연재한다. 인터뷰 주인공인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애독자 및 거제시민의 추천과 제보를 받아 본사 전체회의를 거쳐 선정하고, 거제신문 인터넷 '거제방송'에도 함께 싣는다. 본지는 그 첫 번째 인물로 이기우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연초면 다공리가 고향인 이기우 총장은 교육부 차관과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거제시 대외협력관으로 거제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Q. 거제시민께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 오랜만에 거제에 왔다.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거제를 바쁜 일정 때문에 잘 오지 못했는데 새해라서 지인·친척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찾았다. 거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고 어려운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희망의 노래가 반드시 올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굳은 의지와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거제가 자랑스럽게 또 다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새해를 맞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 빌겠다.

Q.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공무원' 9급 교육공무원에서 교육부 차관까지. '공무원의 신화' '최장기 총장 역임' 등 따르는 수식어가 많다. 수식어 배경은.
=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는 좌우명을 등불로 삼고 있다. '현재의 나'를 방해하는 '과거의 나'는 철저히 죽이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오늘 하루가 가장 소중하다. 또 스스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니 채워가며 살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고졸 출신인데 행정고시 출신이 가득한 공무원 조직에서 어려운 점 없었느냐고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려움은 없었다.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먼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데려다 쓰려고 한 결과 내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자리에 가면 늘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Q. 연초면 다공리가 고향이고 초·중을 연초에서 졸업한 후 부산고까지 유학을 했다. 고향과 학창시절 추억이 있다면.
= 학창시절은 희망보다 좌절이 많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는 잘한 덕에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당시로서는 심각한 병인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1년을 휴학하고 2학년으로 복학했지만 공부가 쉽지 않았다.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고, 늑막염 재발 가능성에 공부 자체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엉겁결에 원서나 써보자는 마음으로 목표도 없이 시험을 치렀고 대입에 실패했다. 대입에는 실패했지만 친구와 우연히 우체국공무원 시험을 봤다가 덜컥 합격해 버렸고 부산 대연동 우체국에서 서서히 어른이 됐다.

Q. 고향에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는지.
=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제일 큰 형님은 연초면 다공마을에 계신다. 형님을 보니 아주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동하며 열심히 지내는 것 같다. 우리 집안의 대소사나 문중의 인삿말을 만들거나 행사할 때 아직까지 형님이 도맡아 하고 있다. 조카도 있고 집안 젊은 사람들도 있는데 참 젊게 산다.

Q. 결혼은 언제 했나. 가족 관계는.
= (이날 이 총장은 수백여 건의 인터뷰 자리에 처음으로 부인을 대동했다) 1973년에 했고 (인터뷰 기준) 모레(1월1일) 결혼 46주년이 된다. 집사람이 장목 사람이고 장목초등학교 출신이라 학교 강당에서 옥치상 옛 교육장이 주례를 맡아서 해줬다. 자녀는 부끄럽지만 아들만 셋이다.

Q. 46년을 살아온 부인께 하고픈 말은.
= 집사람의 품성 자체가 남에게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다. 서울에 살았을 때 아래층에 사는 집이 있었는데 전세 기간이 만기될 때마다 연장을 하고자 했는데 그 조건이 우리 집사람이 좋아서 더 있고 싶다는 얘기를 늘 들어왔다. 50여년 동안 정부 고위직으로, 총장으로 지내올 때마다 뒷받침을 잘해주고 편안하게 해줬기 때문에 항상 감사함을 갖고 있다.

Q. 최근 전국에 강연을 많이 다니신 듯하다. 체력소모가 심할 것 같다. 외모만 봤을 때 70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기관리 방법이 있나.
=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 하나를 제대로 맛있게 먹고, 여러번 씹고 넘기려고 한다. 라면을 먹어도 맛있게 열심히 먹어주면 몸속 영양분이 그 순간은 최고의 음식을 보내줬다고 생각해 열심히 활동한다. 그리고 항상 음식을 먹을 때 집사람이 자리에 있지만 잘 먹었다, 맛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또 시간이 되든 안 되든 침대 위에서 운동 5가지를 꼭 한다. 마루 위에 있는 자전거 역시 30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탄다. 20대에나 30대나 지금이나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는 똑같다. 걸음 100미터 걸어갔을 때 (김동성 대표를 향해) 잘 못 따라올 것이다. (웃음)

Q. 거제 민선7기에서 대외협력관으로 임명되고 변광용 시장의 행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 거제가 어려운 상황이 된 데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작은 힘이라 할지라도 내가 갖고 있는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도와주고 싶었다. 거제 출신의 거제를 돕는 '구원투수'로 활용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자세히 알려줄 수는 없지만. 그 성과는 변광용 시장의 복이자, 제 복이고, 거제시민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Q. 9급 공무원 시절 거제교육청에서도 근무했다.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부산 대연동우체국 서기보로 들어갔지만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돼 다시 시험을 쳐 거제교육청 서기보로 옮겼다. 처음 거제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도 '빨리 돈 벌어서 대학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은 뒷전이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배우고 또 할 수 있었겠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출근을 했더니 제 자리가 없어졌다. 상사가 책상을 밖으로 치우고 시설계로 보냈다. 3개월 동안 먹지로 글을 베끼는 작업만 시키는데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기왕에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라는 결심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서무계로 원위치 됐고 이후 대학입시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니, 생각이 안 났다는 것이 정답이겠다. 왜냐하면 일하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승진점수도 좋았고, 사무관 승진시험도 단번에 붙었다.

이후 공무원으로서 제대로 일하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분투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신명나게 그리고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정성을 들이고자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교육부 차관까지 역임하고 '공무원의 신화'라는 과분한 평가까지 받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Q. 강아지도 1만원 물고 다닌 거제시가 조선 산업 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 활성화로 강아지가 5만원을 물고 다니는 '거제 미래' 전망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
= 거제가 유사 이래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 6.25전쟁 당시 15만 피란민이 전쟁을 견뎠고, IMF 때 거제 조선업이 경제를 회복시킨 것을 일컫는다. 최근 다양한 분석기관에서 장기불황을 겪었던 조선업도 '6년 만의 플러스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거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금강과 구조라해수욕장 등 풍광이 장관을 이루고, 연중 기후도 온화해 사람이 살기 더 없이 좋아 휴양지와 같은 곳이다. 관광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조선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역경제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관광업이 더욱 발전됐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효과를 거둬둘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큰 곳이 거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도시가 갖고 있지 않은 특장점을 살려낸다면 머지않아 거제에서는 "길거리 강아지가 5만원 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보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엮어나가는지가 관건이다.

Q.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면.
= 그런 부분은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보다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밝히겠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을 하고 있는 부서나 거제시민들의 모든 부분을 공감해야 한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특출하게 혼자만 앞으로 열심히 뛴다고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민이 함께 힘을 합쳐서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 남북철도를 연결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프랑스 파리까지 연결이 된다. 거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거제라는 섬은 거제대교·신거제대교·거가대교 등 연결이 돼 육지로 묶여져 있다. 파리에서 거제까지 가장 기운이 모이고, 기가 센 곳이 거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어디서도 만들 수 없다.

거제대교 개통 이후 김영삼 대통령을 배출했고, 거가대교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됐다. 어떤 시기에 좋은 기운의 다리가 만들어지면 대통령이 또 탄생할 수 있다. 발전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거제다.

Q. 지난 20대 총선 뿐 아니라 거제 출마예상인물이라는 하마평에 늘 올라왔다. 출마를 거절했던 이유는.
= 국무총리 비서실에 있을 때 국무총리가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보궐선거 기간 중에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자연스럽게 총리가 정치인이다 보니 비서실장도 정치적으로 판단할 일이 대부분이었다. 주변에서 정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정치를 되려 멀리 했다. 되도록이면 정치를 안 하겠다고 생각해왔다.

Q. 21대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하마평에 또다시 오르고 있다.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있는가.
= 되도록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해왔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때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거제라는 지역이 지금 굉장히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거제의 일을 이제 강 건너 불 보듯 옛날처럼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어떤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가질 수 없다. 개개인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왕이면 이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 되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하지 않고 충분히 감당하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Q. 아픈 청춘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 그동안 대학 총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까지는 학벌 중심 사회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는 시대를 살아왔다. 이제는 그 사람이 어떻게 잘 해낼 수 있느냐 하는 역량이 어떤가에 대해 평가를 받는 시대다.

청소년은 이제는 자기를 귀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 지구 전체의 모든 우주하고 자기하고 비교할 때 자기가 더 위에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자기 몸의 세포 조직들이 주인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자기를 내세울 수 있었으면 한다.

Q. 거제시민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달라.
= 이제는 110세 시대를 살아야 한다. 건강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60·70세라도 잘 해낼 수 있는 직업역량을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 거제시민들도 건강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위해서 무엇을 잘해낼 수 있는지 빨리 찾아내고, 그 일을 함으로써 삶이 재미가 있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더불어 고향 어르신들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기해년에는 크고 작은 일 잘 이뤄져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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