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온돌
  • 석진국 칼럼위원
  • 승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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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황금 돼지해라고 한다. 돼지해는 분명한데 왜 황금돼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왔다.

회갑, 환갑… 한 바퀴 돌았으니 이제 반환점이다. 아니 반환점이라면 60년을 더 살아야 하니 욕심이겠고 이제부터는 여분의 삶이라 함이 맞겠다. 이제부터는 욕심을 줄이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보자. 내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을 살펴보는 삶을 살아보자.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말고 살아있는 날을 즐겨보자. 이렇게 다짐하면서 호수 같은 바다가 보이는 마을 뒤쪽 산등성이 오두막에서 불을 지펴본다.

전쟁이 끝나고 베이비붐이 일면서 운 좋게 태어났다. 차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말렸다. 그때 못 다한 불장난을 이제 이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고요히 즐겨본다. 말릴 어머니도 옛이야기 들려줄 할머니도 아득히 먼 세월을 가셨다.

나무를 때고 그 열기를 돌에 보관해 굽이굽이 펼치는 온돌은 우리 조상들의 독창적인 문화라고 한다. 온돌 또는 구들은 방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 난방 방법이다. 방구들이라고도 한다. 한옥의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거기서 생성된 열기를 머금은 뜨거운 연기가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 밑을 지나면서 난방이 되고, 그 연기는 구들장 끝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시대와 지방에 따라서 온돌의 구조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방 밖에 있는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그 아궁이의 열기가 구들장 아래에 있는 고래를 타고 밖에 만들어 둔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열의 전도, 복사와 대류를 적절하게 이용한 장치다.

온돌의 역사는 신석기시대의 화덕으로부터 시작되어 철기시대에 ㄱ자형 구들과 아궁이로 발전했고 삼국시대의 장갱을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구들과 마루, 아궁이, 부뚜막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부엌에 만들어진 온돌 아궁이는 대부분 취사용 부뚜막을 겸했다.

불을 때는 아궁이, 방 밑에 화기가 통하게 해서 데워주는 구들고래, 연기를 빠지게 하는 굴뚝으로 구성되며, 화기를 통하게 하는 구들고래의 형식에 따라 허튼고래·줄고래·선자고래 등이 있다. 2018년 4월30일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됐다

서양의 벽난로나 일본의 이로리 등은 열원을 직접 이용하는 데 비해, 온돌은 열기로 구들장과 구들장 아래의 고래를 데워 발생하는 '간접 복사열'을 난방에 사용한다. 때문에 잘 된 구들장은 아궁이에서 직접적인 열원을 제거한 이후에도 구들장의 열기가 비교적 장시간 지속된다. 좋은 구들의 조건은 이 '잔류 온기'가 얼마나 오래 가는가에 달려 있다.

단점은 구들(방바닥)이 갈라지거나 깨지면 연기가 올라와서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킬 수 있고 자기 전 불을 지펴서 그 잔류 온기로 온 밤을 지내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 과하게 열을 가하게 되며 아랫목과 윗목에 온도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추운 겨울날 고라니는 무엇에 놀랐는지 질급하는 소리를 울고, 부엉이도 깊은 숲 속에서 운다. 무언가 간절히 부르는 소리….

그렇게 밤새워 부르지만 누가 기꺼이 가랴. 우리들은 이 뜨신 온돌방에 앉아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누나. 아니 핸드폰 동영상이 오랜 할머니를 대신하는 밤. 이 따뜻한 온기를 같이 나누자. 한 번 데우면 쉬이 식지 않는 두터운 황토 온돌방처럼 우리의 우정은, 우리의 사랑은 부엉이 울음 따라 이렇게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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