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어떤 사람은 항상 뒷북만 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남이 이렇게 해서 돈 좀 벌었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해 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또 어떤 사람이 이것이 좀 돈이 된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또 때가 지나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해보면 좋을까 저렇게 해 보면 좋을까, 남들 좋다는 것 다 해보지만 항상 뒷북만 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복이 굴러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하는 일마다 잘 된다. 복이 따라 다니는 사람이 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이 따라 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다.

우리가 축복장이라 부르는 신명기 28장에 보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여 네게 미치리니"(2절) 했다. 복이 네게로 와서 너를 따른다는 말씀이다. 내가 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복이 나를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복을 따라 좇아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복이 따라오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순서를 바르게 해야 한다. 순서가 바르면 모든 것이 바르게 된다. 그러나 순서가 바르지 못하면 모든 것이 힘 든다. 초보 운전자를 코치할 때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후진할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갈 때는 천천히만 가면 별 문제가 없는데 뒤로 가다 보니 사고도 나고 문제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방향을 바로 해야 한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뒤인지 바로 분별할 때 우리의 삶이 쉬워지게 된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들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기 쉽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위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복의 원리는 분명하다.

우리가 먼저 복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될 때 복은 따라오게 된다. 그런데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일에는 별 관심도 없고 그냥 복 받기 위해서 뛰어다닌다면, 그 인생은 피곤하기만 할뿐 복은 항상 저만치 물러가게 되는 것이다.

시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한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것을 말씀한다. 내가 복을 찾아 뛰어 다니지 않아도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형통할 것이다. 문제는 내가 복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창 39장에서 요셉을 소개할 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소개한다. 지금 요셉의 형편을 보면 결코 형통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종으로 팔려와 있다. 그것도 그의 형들의 손에 의해 팔려왔다. 이런 요셉을 어떻게 형통한 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성경은 요셉을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그의 처지는 결코 형통한 자가 아닌데, 어떻게 성경은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할 수 있는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형통한 자가 된다. 형통한 자가 되면 형통해지게 된다. 요셉이 지금은 노예요, 또 조금 있으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통한 자가 되면 결국에는 형통하게 될 것이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니 세월이 흘러 정말 형통해지게 되었다. 애굽을 살리고 아버지를 살리고 형제들을 살리는 애굽의 총리가 됐던 것이다.

형통한 사람,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다. 복 있는 사람이 되면 복은 따라온다. 새해에는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를 깊이 묵상하여 뒷북만 치다 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이 따라오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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