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살리기-영국의 사례
지역신문 살리기-영국의 사례
  • 장호순 칼럼위원
  • 승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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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국은 유럽 선진국 중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한 지역불균형 양상을 보이는 나라이다. 수도인 런던에 정치권력과 경제자본이 집중돼 있고, 언어나 문화 측면에서도 런던은 일류, 지방은 이류라는 차별의식이 강하다. 자연 런던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고, 그로 인해 런던은 심각한 주택난과 교통난을 겪고 있고, 지방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인구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다.

언론 분야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영국의 유력 언론사들은 모두 수도 런던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1100여개의 지역신문이 전국 각지에서 발행되지만 런던에서 발행되는 10여개의 전국 일간지가 영국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국가 중에는 드물게 영국은 지역신문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한 국가이다.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 탙퇴를 국민투표에 부친 이후 극도의 혼란 정국으로 빠져든 요인 중에는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런던에 몰려있는 타블로이드 전국신문의 선동적 보도만 없었어도 영국이 지금과 같은 난국에 처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여파로 영국의 지역신문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1월, 200여개의 지역신문을 소유한 영국 최대 지역신문기업 존스톤 프레스가 채권단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7년 총 매출액은 245만파운드(3500억원)에 달했지만, 그동안 쌓인 부채가 무려 220만파운드로 상환불능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존스톤 프레스는 지난 10년간 기자의 숫자를 1/5로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였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기자 부족으로 기사의 질이 떨어지고, 그래서 독자와 광고주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영국 지역신문의 위기는 존슨톤 프레스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지난 10년간 300여개의 지역신문이 폐간됐다. 지역신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영국사회에는 지역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지역정부를 감시하는 지역언론의 공익적 기능이 위축되면 민주주의 근간 자체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그러나 누구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역신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BBC는 국내 TV 채널만 10개에 달하고, 직원은 2만명이 넘고, 한해 예산은 50억 파운드(7조 1400억원)이다. 영국 국민들은 BBC 1년 시청료로 가구당 147파운드(20만원)를 납부하고,  BBC는 전체 예산의 70%를 시청료로 충당한다. BBC는 영국 내에서 독립국가(Nation) 지위를 갖는 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에 독립적인 방송을 운영하고, 본토인 잉글랜드는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지역방송을 한다. 각 지역은 다시 3∼6개의 생활지역으로 구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프로그램을 서비스하고 있다.

BBC는 영국 왕실로부터 10년 주기로 방송허가를 받는데, 허가 조건 중 하나는 모든 시청자가 자기 지역의 중요한 뉴스를 충분히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BBC 시청료를 강제 징수당하는 영국인들은 그동안 언론보도의 공정성, 프로그램의 다양성 등과 관련해 많은 불만을 표시해왔다. 지역뉴스가 부족하고 부실하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2017년 새로운 왕실허가를 받은 BBC는 영국의 지역언론사들과  '지역뉴스 제휴사업'을 시작했다. BBC의 자산과 인력을 지역신문과 공유하면서 공익적 위상을 높이고, 영국 언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BBC는 영국언론협회와 협약을 맺고, 2018년부터 공모방식을 통해 90여개의 지역언론사와 제휴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BBC 지역뉴스 제휴사업은 크게 세 개의 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지역신문사들이 BBC의 영상·녹음 자료를 사용해 뉴스를 제작할 수 있다 △최대 150명의 기자를 채용해, 전국의 지역신문에 배치한다. 이들은 지역정부와 공공분야를 취재해 BBC와 공동 보도한다. △BBC의 데이터 저널리즘 기술을 지역언론인들에게 전수하고 공동기사를 제작해 공유한다.

BBC가 지역뉴스 제휴사업에 할당한 1년 예산은 800만파운드(115억원)로, 전체 예산의 0.16%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의 평가만 보더라도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회복과 지역신문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양상이다. 신뢰위기에 처한 한국의 공영방송과 경영부실을 면치 못하는 한국의 지역신문이 참조해 볼만한 해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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