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의 추억
신성일의 추억
  • 장호순 칼럼위원
  • 승인 2018.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달 별세한 영화배우 신성일의 소식은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해줬다. 자신이 젊은시절 사모하고 동경했던 대중 스타들이 늙어가고 세상을 떠나면서, 현대인들은 삶의 유한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신성일은 완벽한 외모를 갖췄지만 삶은 그만큼 완벽하지 못했기에 더욱 공감과 연민을 갖게 한 스타였다. 영화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정계에 진출했지만 뇌물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러나 노년에도 당당하게 살았고, 암선고를 받고서도 의연한 투병생활로 유종의 미가 무엇인지 보여준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

신성일은 1960년대 대한민국 영화전성기를 이끈 스타였다. 1960년대 이전에도 영화와 배우들은 많았지만 대중적 인기는 제한적이었다. 영화를 볼만한 극장이 부족했고, 영화를 볼 여유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들어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도시에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영화는 비교적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로 정착되었다. 한국 영화는 그야말로 전성기에 접어들었고, 영화배우는 가장 인기있고 유명한 대중스타가 됐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중문화가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군사독재정권은 영화제작에 대한 허가와 내용검열을 강화했다. 영화의 질적 수준은 퇴화하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다. 70년대 들어 TV 수상기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신성일과 같은 영화배우들의 대중적 인기는 더욱 시들었고, 그 시절을 함께한 세대들에게만 추억의 스타로 남았다.

신성일 사망소식에 즈음해, 필자의 '한국언론의 역사'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물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 조차도 모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새삼 세대차이가 이런 것이구나 확인했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지금 대학생들은 대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에게 기성세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기 위해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부모나 부모세대를 인터뷰해서 그들이 20대 시절에는 어떤 언론과 미디어를 사용했는지 조사하고, 지금의 자신들과 다른 점을 비교하도록 했다. 과제를 마친 학생들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동시 상영관이 있어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화면에 비가 오는 영화가 많았다고 한다. △신문이나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혼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네사람들 전체가 모여서 보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필름값과 인화비용이 들어 조심조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아주 중요한 날에만 찍는 것이었다. △정보검색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궁금한 것이나 모르는 것이 생기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야 했다. 경험많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던 시대였다. △중요한 정보를 얻는 수단은 신문이었다. "신문에 났다"라는 말은 그 정보가 정확하고 진실이라는 의미였다.

학생들에게 세대 간 차이를 비교하는 조별 토론을 시켰더니, 큰 차이가 없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편리한 세상에 살고있고, 더 경쟁력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심심하고 지루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게임이나 영상을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신속하게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부모들이 자신들보다 더 행복한 젊은시절을 보냈다고 부러워했다.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 직접 어울릴 기회가 적고, 마음의 여유도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과 늘 비교돼 상대적 박탈감이 높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청춘은 언제나 바쁘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디지털 청춘세대에게는 유독 여유가 없어 보인다. 힘겨운 시대를 살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낡은 영화관의 추억이라도 있다. 그러나 요즘 청춘들은 아름다운 추억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고된 알바의 추억, 갑질 상사의 추억만 남을까 걱정된다.

60년대 신성일이 불안한 청춘에게 위안을 주는 대중스타였다면, 요즘 청춘들에게는 방탄소년단이 그들의 고된 삶을 위로하고 있는 듯하다. 방탄소년단도 신성일처럼 추억의 청춘스타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