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바둑이 단연 첫 자리에 있다. 중학교 들어갈 무렵 어깨너머로 배운 이놈은 사람을 확 끌어당겨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나를 놓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물 5급 정도였던 실력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고수들을 만나면서 많이 늘어 이제 짱짱한 1급 실력을 자랑한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바둑이란 놈도 너무 빠지면 패가망신하기 쉽다. 그 매력이 특히나 강하기에 그 위험성도 크다. 절세미인을 두고 경국지색 즉 나라를 망칠 정도의 미인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그 절세미인과 더불어 노닐면서도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정말 도가 높은 사람이 아닌가.

바둑을 좋아하면서도 적절히 즐길 수 있다면 마찬가지다. 그런데 바둑을 둘 줄 알면서도 그냥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많으니 정말 사람이란 같으면서도 다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에 세들어 살던 사람이 나보다 열 살쯤 많았는데 그는 짠 3급…. 내 주변에 있는 유일한 고수였고 내가 4점으로 많이 배웠다. 이 사람의 이름과 직장만 알고 있었지만 바둑을 즐길 때마다 머리를 스쳐가는 사람이라 꼭 한 번 연락해 자웅을 겨루리라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 직장에 오래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연락처를 알아보라고 부탁했더니 퇴직자 명부에 같은 이름이 두 명인데 10살쯤 많은 사람은 한 명. 나와 띠 동갑이었다. '011' 전화번호가 있어서 '010'으로 바꿔 전화했더니 바로 그 사람이었고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해운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만나보니 20대 후반의 새파란 젊은이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신사가 돼 있었다.

바둑을 두는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기원에 가서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두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가고 이제 컴퓨터 대국을 주로 한다.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대국자를 만날 수 있으니 격세지감. 마산고 동기로서 서울대와 부산대에 다니던 친구 두 명이 엽서로 한 수씩 표시해 대국하던 모습은 이제 전설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세상이니 정말 괄목상대가 아니라 경천동지.  

바둑은 고대 중국의 요·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들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농경사회였던 고대에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로 바둑이 발명됐다고도 한다. 특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 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해 선사시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해 오늘날의 바둑이 됐다는 설도 있다. 반상의 19×19 = 361을 생각해보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뒀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될 때 바둑도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게임의 토대를 갖추게 된 것은 중세 일본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막부시대에 바둑은 국기로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바둑을 업으로 삼는 기사제도와 본인방 등의 바둑가문이 생기고, 이들에 의해 룰이 정비되며 각종 이론, 정석이 정립되는 등 비로소 근대경기로서의 틀과 체계가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가문세습제도 대신 협회(일본기원)와 프로 제도가 탄생하고, 신문사들이 기전의 스폰서로 나서면서 오늘날 현대바둑의 틀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주름잡던 일본의 시대는 저물고 한국이 한동안 세계를 제패하다가 이제 중국에 밀리고 있으니 시대의 변화는 반상의 변화와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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