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철 거제아동병원 원장
강두철 거제아동병원 원장

얼마전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 문제로 들렀다.초등학교 고학년때 뇌전증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여 완치판정을 받았고 약물치료를 중단한지도 5년이나 지난 상태로 아주 모범적인 아이였다.

대학에서 기계관련 학과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후 몇몇 대기업 신입사원모집 서류전형에 합격했는데 번번히 면접에서 탈락해 힘들어 하고 있었다.

군대 문제였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쳤는데 면접관의 "왜 공익근무를 했느냐"란 질문에 거짓을 말할 수 없어 뇌전증으로 완치됐지만 공익판정을 받았다고 답변을 하면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수년전 서울아산병원 신경과팀의 연구에 의하면 국내 뇌전증 환자의 실업률이 평균 실업률의 5배에 달하며, 고용주에게 뇌전증에 대해 밝혔을 때 채용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55%나 된다고 보고했다.

뇌전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반복적인 발작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하며 국내 유병율은 인구 1000명당 4~10명으로 환자수는 대략 20~50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환자 본인이 증상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사회인식으로 인해 숨기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는 일차적으로 약물치료가 권장되며 식이요법이나 수술치료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대략 약 5년정도 발작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관해(remission)또는 완치라고 규정을 하고 있다.(필자의 다른칼럼 참조)

뇌전증의 일차적인 치료목표는 발작의 조절이라 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개선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환자본인의 발작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또는 수치심, 오해와 편견이라는 사회적인 낙인과 더불어 운전 및 취업의 제한, 결혼 및 사회생활의 어려움으로 위축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상적인 사회활동과 결혼 등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안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많은 뇌전증 환자들은 특히 사회적인 낙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취업이 힘들며 이에 따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2017년10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사업장근로자의 뇌전증관리지침(KOSHA GUIDE H-189-2017)' 중 뇌전증관해(remission of epilepsy)란 뇌전증 발작이 없는 상태를 뜻하며 통상 2~5년간 뇌전증 발적이 없을 때 관해가 됐다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 평가에 있어 전체 업무 중 자동차 운전과 비슷한 정도의 위험을 내포하는 작업이 전체 업무시간의 15%를 넘지 않으면 '비교적 안전한 업무'로 판단하며 이 경우 업무제한 없이 근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공무원 '신체검사 불합격기준'에는 업무수행에 큰 지장이 있는 뇌전증이 포함돼 있으나 그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 않아 채용담당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이 될 수 있는 애매한 상태로 국가에서 뇌전증 환자에게 차별을 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뇌전증 환자가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라면 업무적합성 평가 등을 통해 구제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뇌전증을 가진 사람에게 차별없이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부당한 업무의 제한 없이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맞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개인에게만 경제적·사회적인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의 법적인 조치와 사회인식 변화 등을 포함한 배려로 뇌전증을 환자들에게 진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이 아닌 육체적,정신적,사회적 및 영적인 안녕이 역동적이며 완전한 상태에 있는것을 의미한다.'

"Health is a dynamic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spiritu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뇌전증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소아신경전문의로서 뇌전증환자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와 배려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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