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지 '통곡의 벽' 입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학살한 독일군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쓰여져 있다. 이는 유대인의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서인데 이 글은 유대인뿐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 역시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40년 이상을 침탈 당하다보니 일본과의 위안부·강제징용 등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민족적 감정으로 남아있다. 특히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분이 형식적으로 끝난 우리에게는 이념적 대립의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얼마 전 거제시에서도 이같은 양상이 벌어졌다. '친일 김백일 동상 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져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6.25의 영웅인 김백일 장군 동상을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철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에 대해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법대로 해라! 피난민을 구한 영웅을 엉터리자료로 매도 말라!"고 기자회견장에서 반대 의견을 주장했다.

김백일 장군은 반민족친일 앞잡이인가 아니면 흥남철수작전 중 거제를 비롯한 부산 피난민들의 영웅인가 양측의 논리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반박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존치냐 철거냐'인데 이를 누가 결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대책위는 권민호 전 시장의 역사적폐라며 새로운 변광용 시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도 어렵다. 변 시장은 '세계로 가는 평화의 도시'를 시정지표로 삼고 흥남철수작전을 토대로 남북교류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변 시장에게 흥남철수작전의 영웅 김백일 장군 동상철거는 자칫 평화로 상징되는 흥남철수작전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대책위는 철거할 명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책위가 힘을 얻으려면 충분한 공론화를 통해 시민들의 공감대에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철거뿐 아니라 다른 방법은 없는지 모색할 필요성도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또한 김백일 장군이 피난민들의 영웅일지는 모르지만 과거 객관적 친일행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김백일 장군은 1938년 12월 간도특설대(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 창설요원으로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제5기로 졸업했다. 항일무장부부대토벌 등 일제침략에 적극 협력한 공로로 1943년 일제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위 경운장을 받았다.

1944년 팔도군 토벌작전과 만주국 대위로 진급해 중대장이 됐다고 적시한다면 그의 친일 반민족행위가 사라지는 것일까? 또 동상 옆에 김백일 친일 행적을 적은 '단죄비'를 세우면 동상은 존치해도 되는 것일까?

참 어려운 문제다. 존치냐 철거냐를 두고 싸우는 양 단체들의 문제가 아니고 아픈 과거를 간직한 우리 민족의 문제이고 아픔이다. 오늘을 사는 시민들은 용서와 화해, 둘 중에 어느 것에 비중을 두느냐의 몫이 있다.

통곡의 벽에 쓰여 있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처럼 우리 민족도 용서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할 민족정기를 세우는데 영웅들의 어두운 과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는 우리들의 운명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유네스코 지정유산이다. 그런데 만리장성 케이블카를 타는 주위에 일본인들로부터 만행을 당하는 중국인들의 사진과 남경대학살 장면 사진들과 함께 물망국치(勿忘國恥)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구호가 벽에 쓰여 있다. 중국인들이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물망국치라는 구호와 부끄러운 과거 사진을 걸어놓은 뜻을 우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김백일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느냐 존치하느냐의 문제는 두 단체의 싸움이 아니라 시민들이 김백일 장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시민들에게 물어야 한다.

통곡의 벽에 쓰인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는 유대인들이 새긴 글을 우리 시민 모두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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