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나는 격동의 8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시절이 어수선한만큼 내 친구들은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멋진 가수와 잘생긴 배우를 열렬하게 좋아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요즘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팬클럽 멤버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열심히 그들을 좋아하고 숭배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평생을 살아오면서 영화배우나 가수에게 미쳐서 쫓아다닌 적이 없는 것 같다. 원래부터 사람한테 기대하는 바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특별한 나만의 이상형이 없었다. 누가 멋진 건지, 누가 잘생긴 건지 잘 몰랐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87년 어느날 참 멋있다고 느끼는 배우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우연히 친구와 '영웅본색' 영화를 보러갔다가 마음에 드는 분위기 있는 배우 '주윤발'을 보게 된 것이다. 지금 영웅본색의 영화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주윤발의 바람에 날리는 코트 자락에 내 감성이 말려든 것이다. 그 후로 주윤발이 나오는 영화라면 장르 불문하고 보러 다녔는데 특히 '와호장룡'은 대 여섯 번은 족히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젊은 날의 주윤발이 잊혀갈 무렵, 최근에 다시 긴 코트 자락을 날리며 주윤발이 특유의 은은한 미소를 흩날리며 뉴스에 등장했다.

그의 중국이름은 '저우룬파'이다. 올해 예순넷인 그는 평생 아끼며 모은 전 재산 8100억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작 자신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한 달 용돈으로 12만원을 쓴다고 했다. 또 17년 동안 같은 핸드폰을 사용했으며 2년 전에 새로 핸드폰을 바꿨는데 그 이유가 핸드폰이 고장 나서란다. 재산을 8000억이나 가진 사람이 17년 동안 핸드폰을 바꾸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그가 단지 남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자기 재산 중의 얼마를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를 전혀 몰랐던 나는 신문기사를 보고서야 그가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호텔 벨보이·택시운전사·우편배달부 등 거치지 않은 직업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통 이런 삶을 산 사람은 그 불행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호화롭게 살면서 온갖 사치를 다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그는 그 상식을 보란 듯이 깨고 검소하고 반듯하게 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잠시 교만해진다. 역시 나는 사람을 잘 본단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멋진 삶이 나를 우쭐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전에 과일장사로 평생을 모은 400억을 고려대에 기부한 노부부도 있다. 나는 그 분들도 나의 우상인 주윤발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참 짜증나는 나의 속물적인 근성에 의하면 나는 아마 400억으로 세계 일주도 하고 세계 최상급 호텔에서 온갖 허영을 떨며 가진 척을 했을 것이다.

더 훌륭한 점은 그렇게 모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기부하겠다는 부모의 생각에 그들의 자녀들이 동의했다는데 있다. 현명한 부모의 훌륭한 자녀들이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400억이나 되는 재물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배우 주윤발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한 말이 있다. "돈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잠시 맡아서 보관할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으로,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의 삶과 가치관이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경제가 어렵고 거제도도 힘들지만 나의 젊은 날을 기쁘게 했던 주윤발 오빠의 통 큰 기부가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의 연기처럼 그는 멋져도 너무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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