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경 거제면 산달도에서 여자예비군이 처음 창설됐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자 예비군은 1989년 서해 최전방인 백령도와 대청도에서 군인 가족을 중심으로 여성예비군이 창설됐다고 한다. 내륙지역으로는 최초로 창원시 직장 여자예비군 소대가 창설됐으며, 1999년 강원도 인제군청 여자 예비군 소대, 2004년 3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여자 예비군 소대,  2005년 3월 강원도 양양군 여자 예비군 소대 등 6개 지역에서 창설됐다는 기록이 있다. 거제면 산달도의 예비군은 그 보다 앞서 자체적으로 창설됐다. 

거제는 고려·조선시대 일본의 외침이 잦았던 곳이며, 6.25전쟁 때는 포로수용소가 있었고, 20만이 넘는 흥남 난민들이 와서 살았던 곳이다. 피난민들 중에는 간첩들도 많이 있었다.

그때부터 고정 간첩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자취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남단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동해 서해를 통해서 해상으로 간첩들이 많이 침투했다. 1970년 10월6일 간첩이 다대마을 뒷산에서 주민들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물이 묻은 권총을 손질하다 오발로 다리에 상처가 났다.

그날은 다대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예비군들이 올라가서 간첩을 채포했다. 그 후에 동부면 백연암절에 신도로 가장해 침투한 여간첩 사건과 남부면 신선대로 침투한 부부간첩, 사등의 고정 간첩사건 등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들로 주민들은 자체적인 예비군 훈련과 해안경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69년 4월1일에 전국적으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이때 예비군은 공무원을 비롯해 사회단체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향토예비군 훈련으로 자주국방에 앞장섰다.

당시 산달도에는 해녀를 비롯해 젊은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자주국방을 위해 바다로 침투하는 간첩을 잡자는 애국정신으로 똘똘 뭉쳐 여자예비군을 만들었다. 대부분 30대 전후로 구성된 여자예비군은 총검술을 비롯해 낮선 사람의 동태를 파악해 신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간첩신고 정신과, 마을의 번영을 위해 힘을 합쳐 잘사는 마을로 이끌어 가자는데 근본 뜻이 있었다.

그 당시 여성예비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지금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됐을 것이다. 이 사진으로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기 바란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