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초가을 하청면 신동마을 앞으로 흐르는 작은 도랑물에서 빨래하는 모습이다. 새마을사업으로 만든 빨래터로 산골짜기 물을 한 곳으로 모아서 작은 도랑을 만들었다. 주변에 빨래하기 좋게 돌도 깔아 놨다.

빨래터를 만들기 전에는 가까운 냇가로 나가서 빨래를 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은 빨래하러 가는데 힘들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찬바람에 추워서 빨래하기도 힘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돌멩이로 둥그렇게 얼음구멍을 만들어 빨래를 했다. 그럴 때는 옆에서 냄비에 물을 끓여 얼어붙은 손을 더운물에 담갔다 빼고, 또 호호 불면서 뽀얗게 빤 빨래를 강가 나뭇가지나 바윗돌 위에 널어서 말렸다. 어떤 날은 옷이 꽁꽁 얼어붙어 잘못하면 옷이 부러지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빨래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그 당시 솜옷이 유행했다. 솜옷은 물에 젖으면 잘 마르지도 않고 무거웠다. 내복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여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 하고 청소하고 밭일과 길쌈하면서, 날 좋은 날이면 모아뒀던 빨래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였다.

1970년 새마을사업이 일어나면서 마을마다 빨래터를 만들었다.

사진 속 신동마을 빨래터는 빨래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먼 이웃에서도 빨래하러 왔다. 돌담장이 북풍을 막고 따뜻한 양지쪽으로 물이 항상 흐르기 때문에 겨울에도 물이 잘 얼지 않아 빨래하기 좋았다. 또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면서 정담을 나누고 주변에는 아이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이때는 유치원이 없어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다. 언제나 할머니·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어른들이 하는 일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

옛날에는 빨랫비누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때 볏짚 재를 물속에 넣고 얼마뒤 건져내 삼베천이나 모시천을 이용해 잿물만 빠지도록 했다. 그 잿물을 이용해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가끔 비누가 있긴 해도 대부분은 가정에서 손수 만든 비누다. 부엌에 있는 재에 양잿물을 섞어 단단하게 해뒀다가 비누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전기를 이용해 자동으로 밥과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시집가면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벙어리 삼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참 살기 좋은 여자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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